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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고통의 3일이 지났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던 여인들은 새벽이 밝아오기를 기다려 예수님의 무덤가에 갔습니다. 찢길대로 찢긴 그의 몸에 향료를 발라드리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희망은 사라졌습니다. 예수님이 떠난 세상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한 것이 여인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제 작별의 시간입니다. 예수님 계시지 않은 세상을 어떻게 버텨낼까요? 그런데 여인들이 무덤에 도착했을 때 큰 지진이 일어나더니, 주의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천사는 돌문을 굴려 내고 그 돌 위에 앉았습니다. 무덤을 지키는 이들은 너무 놀라 마치 죽은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천사는 여인들에게 말했습니다. "무서워 마십시오." "예수를 찾지요? 그는 여기 계시지 않습니다. 살아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전하십시오. 그는 살아나셔서 그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십니다." 오늘 천사가 전한 소식 가운데 "그는 여기 계시지 않습니다." 하는 말씀에 주목합니다. '여기'는 무덤입니다. 무덤은 죽은 자가 누워있는 곳입니다. 주님은 무덤에 계시지 않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어떻게 죽음의 자리에 누워있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들은 무덤에서 예수님을 찾고 있지는 않는지요? 오늘 우리가 서성이고 있는 무덤가는 어디입니까? 무력한 신앙, 실천없는 신앙은 우리가 떠나야 할 무덤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평화로운 잠에 빠진 한 밤중, 커다란 바위 하나가 산에서부터 굴러 내려옵니다. 몇몇 사람들은 바위가 구르면서 내는 굉음에 놀라 졸린 눈을 비비며 밖으로 나왔습니다. 바위의 기세로 보아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마을을 덮칠 것이고, 그 결과는 말로 하지 않아도 자명했습니다. 무슨 조치를 강구해야 했지만 아무도 선뜻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무엇으로도 그 바위를 멈출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한 젊은이가 나서서 바위 앞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청년이 그 바위를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청년의 비명을 삼킨 바위는 여전히 맹렬한 기세로 굴러내립니다. 어리석은 죽음이었습니다. 마침내 바위는 그 젊은이가 흘린 선혈로 붉게 물들었습니다. 그때, 보십시오. 바위의 속도가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바위는 내리막길에서 멈추어서더니, 산 위를 향해 서서히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영화 필름을 거꾸로 돌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한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그 젊은이의 피를 지울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인류는 죄의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자기들 앞에 당도한 위험을 알지도 못한 채 죽음은 단잠을 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두가 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 젊은이, 예수님이 그 죄의 큰 바위 속에 뛰어들었습니다. 그가 흘린 피, 인류의 가슴에 점점이 아로새겨진 그 붉은 피가 마침내 세상을 멸망에서 구했습니다.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한숨이나 내쉬고 날마다 불평과 원망 속에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치밀한 논리와 이론으로 무장했지만 생명에 대한 진정한 사랑의 능력을 잃어버린 신학이 있습니다. 그들은 살아있는 예수님과 만난 적도, 만날 생각도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남겨주신 말씀과 행적을 돋보기를 쓰고 탐색할 뿐 살아계신 예수님과 오늘을 살지 못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진리를 위한 싸움에 나서면서, 미움의 세상에서 사랑을 선택하면서 '죽어도 죽지 않는다', '희망과 사랑은 결코 죽을 수 없다'는 사실을 믿으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낙심할 수 없습니다.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불신앙적인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가능성이 끝난 자리,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희망이 시작됨을 우리는 믿습니다. 무력한 신앙에서 떠나십시오. 안전을 위해 저항을 포기하는 삶도 무덤에 매어있는 삶입니다.


분단된지 63년이 되도록 우리는 남북으로 갈라진 채 살고 있습니다. 63번의 부활절을 보내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민족의 부활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선거를 맞아 동서로 나뉘어진 이 나라의 정치 상황이야말로 우리가 떠나야 할 또 다른 무덤입니다. 좁은 땅에서 지역에 따라 편을 가르는 것은 사탄이 기뻐할 일입니다. 이제 우리는 서로를 의혹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을 그만두고 사랑으로 서로를 얼싸안아야 합니다. 풍요로운 삶을 위해 자연을 함부로 착취해왔던 삶의 방식을 이제는 떠나야 합니다. 허깃증에 시달리다가 급기야는 자기의 팔과 다리마저 먹어버린 에릭직톤이란 신화 상의 인물이 오늘 우리의 가슴 속에서 부활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소비가 미덕이라든지, 더 많이, 더 편리한 것이 행복한 삶이라는 허위를 벗어나야 합니다. 자연과 우리는 주종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공생해야 할 이웃들입니다. 이웃을 함부로 대했던 우리의 과거가 오늘 생태계의 파괴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간 중심주의의 무덤에서 떠나십시오. 자연과 교감하며 사십시오. 하나님은 오늘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을 통해 탄식하는 피조물들을 치유하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다면 자연은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아니라, 우리의 '몸'의 일부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하나되게 하는 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지금 갈릴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눈물과 아픔의 땅, 시련과 소외의 땅 갈릴리 그곳에서 주님은 지금 부활의 씨를 뿌리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하는 님'입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하나님은 항상 어떤 일 속에서 우리를 만나시는 동사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서 오늘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 부활의 신앙이 있다면, 우리도 주님의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이 아름다운 부활절, 여러분 모두 절망의 자리, 무기력의 자리, 불신앙의 자리, 비겁의 자리 털고 일어나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기 위해 우리 시대의 갈릴리로 가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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