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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한국에선 지난 13일에 국회의원선거가 있었습니다. 결과를 떠나서 ‘약자들에 대한 우선적 배려’를 생각하는 지도자들이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어제는 세월호가 있은 지 2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은 기억하겠다는 말입니다. 히브리 백성이 이집트에서의 압제 속에서 자유케 되는 날, 출애굽 하여 홍해를 건너던 날을 기억합니다. 히브리 백성은 땅의 백성들입니다. 망초, 고들빼기, 지칭개, 냉이는 지면에 납작하게 엎드려 겨울을 납니다. 땅에 엎드려 있으니 겨울의 찬바람을 피할 수 있고, 줄기가 없으니 밟혀도 꺾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겨울나기 식물의 모양이 마치 장미꽃 모양과 같다 하여 그것을 로우젯(로제트, Rosette)이라고 부릅니다. 겨울나기 식물들이 봄을 기다리듯이, 가장 낮은 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야말로 메시야 오시기를 기다리는 역사의 장미꽃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바울 사도가 말하듯이 지금은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 곧 은총의 때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더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잠’은 ‘눈을 감고 쉬는 의식 없는 상태’를 이르는 말이 아니라, 영적인 게으름, 나태 혹은 무지를 이르는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이런 잠에 빠져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기쁨을 누리며 살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제시한 행복의 조건을 마련하느라 동분서주합니다. 하지만 행복은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저만치에 있을 뿐 손에 넣을 수가 없습니다. “더 많이, 더 편리하게, 남과 구별되게…”. 이것이 이 세대가 우리를 길들이기 위해 사용하는 구호입니다. 그 구호에 맞춰 행복의 조건이라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 분주하다 보니, 이웃들에게 무관심해지고, 부드럽던 마음은 묵정밭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십시오”(롬12:15)라고 권고하지만 우리는 남들의 기쁨을 내 일처럼 기뻐하지 못하고, 우는 이들의 암담한 처지를 보아도 아파하지 않습니다. 삶이 어려워서인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에 비추어 자기를 반성하거나 돌이키려 하지도 않습니다. 우리 현실이 암담한 것은 정치적 혼돈이나 경제적 어려움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사람다움을 잃어 성정이 거칠어지고, 공동체의 따뜻함이 사라지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 신문에서 요즘 많은 고등학교 학생들이 노스페이스라는 브랜드의 점퍼를 입고 다닌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상당히 비싼 옷인데도 학생들은 그 점퍼를 마치 교복처럼 입는다고 합니다. 학자들은 그 이유를 학생들의 좌절감과 연결시켜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적 위주 사회에서 불안감과 좌절감을 느낀 학생들이 또래집단 다수가 소비하는 고가 제품을 동조 소비함으로써 나도 주류에 포함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는 것입니다. 가슴이 헛헛한 사람은 뭔가를 소유함으로 존재의 이유를 확인받고 싶어 합니다.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의 분석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는 삶에는 두 가지 존재 양식이 있다 했습니다. 하나는 가짐의 존재 양식(having mode of existence)이고, 다른 하나는 있음의 존재 양식(being mode of existence)입니다. 청소년들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소유에 대한 관심이 존재에 대한 관심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를 묻기보다는 소유를 통해 자기 가치를 입증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소비사회는 지칠 줄 모르고 새로운 욕망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일단 그 과정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은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이제는 그 혼곤한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일단 잠에서 깨어나면, 다시 말해 예수가 우리 속에 들어오면 지금까지 우리가 온 힘을 다해 추구하고 있던 것들이 사실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가치의 우선순위가 바뀌게 됩니다. 마음 씀이 달라집니다. 한마디로 변화된(transform) 사람이 되는 겁니다. 이전에는 그저 지당한 말씀이라고 생각하며 지나가곤 했던 잠언의 말씀이 요즘은 금과옥조처럼 여겨집니다. “고난 받는 사람에게는 모든 날이 다 불행한 날이지만, 마음이 즐거운 사람에게는 모든 날이 잔칫날이다. 재산이 적어도 주님을 경외하며 사는 것이, 재산이 많아서 다투며 사는 것보다 낫다. 서로 사랑하며 채소를 먹고 사는 것이, 서로 미워하며 기름진 쇠고기를 먹고 사는 것보다 낫다.”(잠15:15-17) 이것을 개인 혹은 가정에 국한해서 생각하지 말고 우리 사회 전체와도 관련시켜 보면 좋겠습니다. 거룩한 삶이란 추수 때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의 몫으로 밭의 한 모퉁이를 남겨두는 것과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로 옷 입기 위해서는 먼저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음행과 방탕에 빠지지 말라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고단한 현실을 잊기 위해 쾌락에 몸을 맡깁니다.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을 존엄한 인격이 아닌 수단으로 대합니다. 그것은 자기는 물론 그 대상까지도 비인간화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는 것처럼 큰 죄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자신이 존중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때 우리는 상대방을 곱게 보거나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갈등과 폭력은 바로 여기에서 유래합니다. 세상의 모든 악덕의 뿌리는 남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마음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자다가 깨야 할 때입니다. 옛 사람의 옷을 벗고 그리스도로 옷을 입어야 할 때입니다.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것을 한탄하지 말고, 주님의 생명에 주체적으로 동참하는 기쁨을 누리며 사십시오.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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