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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브라질 리오에서 올림픽이 시작되었습니다. 전 세계의 축제가 막이 올리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삼바축제의 비일상적인 흥분 상태는 지속될 수 없습니다. 흥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일상을 마주해야 할 것입니다. 올림픽을 치룬 나라나 도시가 그 이후에 빚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 하는 노래를 떠올립니다. “관객은 열띤 연기를 보고 때론 울고 웃으며/자신이 주인공이 된 듯 착각도 하지만/끝나면 모두들 떠나버리고 무대 위엔/정적만이 남아 있죠. 고독만이 흐르고 있죠.” 이것이 일상입니다. 일상의 삶은 놀랄 것도 별로 없고, 신나게 웃을 일도 별로 없습니다. 어제 뭘 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바쁘게 돌아치기는 하는데, 정작 존재가 고양되는 느낌은 별로 없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무력감에 빠진 것처럼 보입니다. 어깨는 축 처지고 걸음걸이는 확고하지 못합니다. 행복한 얼굴들을 보기 어렵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대안동경 (對岸憧憬) 속에서 살아갑니다. ‘지금 여기’보다는 ‘저 너머’ 어딘가에 더 나은 삶이 있을 것 같고, ‘오늘’보다는 과거가 혹은 미래가 더 낫다는 생각에 빠져 살아갑니다. 그것은 불행의 내면화이고, 기쁨의 거절입니다. ‘지금, 여기’에서의 삶에 충실하지 않고는 행복해질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물론 지고 가야 하는 인생의 짐이 무겁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고통이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경중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려움이 없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어느 결에 불평 창고를 짓는 일에 전문가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삶으로 초대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기운 생동하는 삶, 기뻐하는 삶으로의 초대입니다. 작가인 에밀리 브론테는 자기는 평생토록 그 명령 하나만큼은 열심히 지켰노라고 말했습니다. 눈을 떠서 바라보면 세상은 하나님의 신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담이 짐승들의 이름을 지은 일을 아시지요? 우리는 쉽게 하나님이 아담에게 짐승들의 이름을 짓는 일을 맡기셨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만드신 각종 짐승들을 아담 앞으로 이끌어 오시고는 아담이 그것들을 무엇이라고 하는지를 지켜보셨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놀라고 기뻐하고 찬탄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놀라고 찬탄할 줄 모른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숨이 우리 속에 세차게 머물 때 우리는 경탄할 줄 아는 사람이 됩니다. 글을 쓰는 김정운 교수는 “감탄을 표현하고 살자”고 말합니다.


성령의 능력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삶을 축제로 만듭니다. 사도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골방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도 나누고 기도도 함께 했지만 그들은 무력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강림의 체험을 통해 그들은 두려움의 문빗장을 열고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성도들은 역동적으로 모이기 시작했고, 모일 때마다 떡을 나누고 기도하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사도들을 통해 기사와 이적도 많이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그들 사이에 일으킨 가장 큰 기적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기적이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서로 나누었고, 부자들은 자기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한 가족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성령은 이처럼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줍니다. 그들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였고, 서로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 어렵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합니다. 그게 속 편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마음을 열고 다른 이를 맞아들이려다가 상처를 입은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경험이 누적될수록 우리는 이웃들을 향해 마음을 닫고, 더욱 방어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성령께서 임했을 때 그들은 그런 모든 차이를 뛰어넘어,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사랑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더 이상 관습, 신분, 남녀, 노소의 차별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삶의 축제로 부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성령은 차별을 넘어 우리가 서로 소통하는 기쁨을 창조합니다. 올림픽 경기에서 우리나라가 메달을 따면 사람들은 서로 얼싸안으며 기뻐합니다. 옆 사람을 보면서 그의 종교가 뭔지, 직업이 뭔지를 따진 후 얼싸안지는 않습니다. 성령도 그렇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새 술에 취한 듯 기쁜 사람입니다. 또한 그는 다른 이들의 고통을 진심으로 아파합니다. 그래서 그의 곁에 머물면서 그에게 삶의 용기를 북돋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합니다. 이 마음으로 살 때 우리 삶은 축제가 됩니다. ‘나’에게 사로잡혀 있는 한 삶은 무겁게 마련입니다. ‘너’를 향해 나아갈 때 우리 삶은 가벼워집니다. 성령을 향해 마음을 여십시오. 그 능력으로 기운 찬 삶을 사십시오.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십시오. 예배 공동체로 나아가십시오. 지난주에 찬양대에서 두 달 동안 찬양대원으로 예배자로 함께 섬기시다가 동부로 떠나시는 두 교수님 가정을 환송하면서 주 안에서, 한 성령 안에서 한 공동체임을 알았습니다. 삶을 축제로 바꾸십시오.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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