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신앙칼럼

바울 사도는 교회를 가리켜 ‘한 몸 공동체’라 했습니다. 교회의 신비는 서로 다른 지체들이 어울려 한 몸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어울림의 전제조건은 ‘다름’입니다. 모두가 똑같다면 어울림이란 애당초에 불가능합니다. 어쩌면 어울림은 사람됨의 근본인지도 모릅니다. 어떤 이는 ‘사람’, ‘삶’, ‘사랑’이라는 단어의 뿌리가 같을 거라면서 재미있는 분석을 했습니다. 세 단어 모두에 포함된 것은 자음 ‘ㅅ’과 ‘ㄹ’, 모음 ‘ㅏ’, 그리고 받침에 있는 자음 ‘ㅁ, ㅇ’입니다. 그런데 시옷은 치아 끝에서 나는 파열음이고, 리을은 치아 안쪽에서 나는 굴림음이고, 미음과 이응은 입의 저 끝에서 콧소리와 함께 나는 비음입니다. 정말 다양한 소리가 어울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제 오클랜드한국학교의 개강식이 있었습니다. 다양한 학생들, 학부모들, 선생님들이 모였습니다. 사람, 삶, 사랑의 근본이 서로 다른 것의 어울려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롬12:1) 예배는 우리 몸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물(holy sacrifice)로 바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합당한 예배이고 영적인 예배입니다. 영적인 예배는 몸을 통해서만 구현됩니다. 영적인 예배를 드리려는 이들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는 제물을 바치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제물을 바치는 행위도 반복되다 보면 틀에 박힌 형식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가지고 가야 할 또 다른 예물은 우리의 거룩한 삶입니다. 거룩한 삶은 이웃과의 관계를 통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과 세상에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이웃 사랑은 관념이 아니라 일상에서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삶입니다. 밭에서 난 곡식을 거두어들일 때 밭 구석구석까지 거두어들이지 않는 것, 떨어진 이삭을 줍지 않는 것, 이웃을 속이지 않는 것, 이웃을 억누르거나 이웃의 것을 빼앗지 않는 것, 품군의 삯을 가로채지 않는 것, 듣지 못하는 사람이라 하여 저주하지 않는 것, 보지 못하는 사람 앞에 걸려 넘어질 것을 놓지 않는 것, 재판을 공정하게 하는 것, 남을 헐뜯지 않는 것…. 이 목록은 한 없이 늘어날 수 있을 겁니다.

어찌 살아야 마땅한지를 잘 알면서도 우리는 이웃 사랑을 실천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만족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감사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늘 자기의 결핍을 채우기에 급급하기 때문입니다. 욕망의 쳇바퀴를 돌리는 사람은 숨만 가쁠 뿐입니다. 전도서 기자는 "눈은 보아도 만족하지 않으며 귀는 들어도 차지 않는다"(전1:8)고 말했습니다. 사람 속에는 세상에 있는 것들로는 채울 수 없는 심연이 있습니다. 그 심연 앞에 설 때마다 우리는 현기증을 느끼거나 허무함에 사로잡힙니다. 에르네스또 까르데날은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마음속에 상처를 입고 태어난다. 하나의 목마름을 안고 태어난다"고 노래합니다. 그 목마름은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는 채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전심을 다해 구해야 할 것은 세상의 '이런 저런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도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왔습니다. 마음을 찢어서 심장과 지정의를 그분께 드리고 있는지 물어 보아야 합니다. 시인 최승호는 삶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예배를 '자동세탁기'에 견준 적이 있습니다. 때묻는 옷을 자동세탁기 안에 집어던지듯, 일주일 동안 살면서 지은 죄를 교회에 오는 것으로 말끔히 씻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들에게 진정한 예배를 드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번 여름말씀집회의 주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자”입니다. 이 뜨거운 여름에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 되고 하나님을 체험하는 예배가 되기를 원합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2장에서 우리가 드려야 할 이성적인 예배는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을 하나님께 봉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 사도의 말씀은 명백합니다. 하나님이 받으실 예배는 구별된 장소에서 구별된 사람끼리 드리는 이런 예배가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라는 것입니다. 밥을 먹고, 친구를 만나고, 사랑을 나누고, 일하는 그 모든 과정을 하나님께 바치는 심정으로 사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라는 것이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가 무의미하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 예배야말로 일상의 예배를 위한 출발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는 좋은 신자처럼 보이는 데, 구체적인 생의 현장에서는 비신자처럼 살아간다면 곤란한 일입니다. 자기의 못된 행실을 아파하지도 않고, 고치려 몸부림치지도 않고 드리는 예배는 이사야의 말대로 '성전의 뜰만 밟는' 것(사1:12)입니다.

이제 리오에서 열리던 올림픽도 막을 내렸습니다. 화려한 올림픽 뒤에 고통 받는 이들의 사정은 사람들에게 가리워질 수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절망은 그저 늘 보던 풍경인양 도외시되고 있습니다. 여전히 세상에는 테러와 학살이 벌어지고, 난민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처지를 외면하고 드리는 예배는 진정한 예배일 수 없습니다. 이 땅의 교회가 새로워지려면 진정한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예배가 회복되면 우리는 서로를 정성스럽게 대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인 것은 바로 서로에 대한 존중과 사랑의 기운을 세상에 퍼뜨릴 때입니다. 오클랜드교회의 믿음이 진정한 예배를 통해 깊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7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사람의 복-2017년 4월 23일 오클랜드한인교회 2017-04-23 55
76 할렐루야! 예수께서 부활하셨습니다_2017년 4월 16일 오클랜드한인교회 2017-04-15 361
» 살아계신 하나님께 드려지는 합당한 예배_2016년 8월 21일 오클랜드한인교회 2016-08-20 6484
74 본 마음을 찾으라_2016년 8월 14일 오클랜드한인교회 2016-08-13 5612
73 새 술에 취한 사람들_2016년 8월 7일 오클랜드한인교회 2016-08-06 5691
72 넘어진 자에게 부어주시는 은총의 불_2016년 7월 31일 오클랜드한인교회 2016-08-06 5656
71 신령과 진정으로_2016년 7월 24일 오클랜드한인교회 2016-07-23 5715
70 공중의 나는 새를 보아라_2016년 7월17일 오클랜드한인교회 2016-07-16 5674
69 얼싸 안아 주어야 함께 살 수 있는 세상_2016년 7월 10일 오클랜드한인교회 2016-07-09 5863
68 헌신이 있는 곳, 그곳에..._2016년 6월 26일 오클랜드한인교회 2016-06-25 5929
67 관용_2016년 6월 19일 오클랜드한인교회 2016-06-18 6108
66 무너진 기초를 다시 쌓을 때_2016년 6월 12일 오클랜드한인교회 2016-06-11 6163
65 그리스도를 본받아_2016년 5월 29일 오클랜드한인교회 2016-05-28 6217
64 작은 변화가 희망이다_2016년 5월 22일 오클랜드한인교회 2016-05-21 6231
63 서로 받으라_2016년 5월 15일 오클랜드한인교회 2016-05-21 6245
62 하루를 영원처럼_2016년 5월 8일 오클랜드한인교회 2016-05-21 6110
61 사랑과 기쁨으로의 초대_2016년 5월 1일 오클랜드한인교회 2016-04-30 6458
60 상대방을 알기 위해서는 그 자리에 서 보아야 합니다_2016년 4월 24일 오클랜드한인교회 2016-04-23 7294
59 주 예수로 옷 입으라_2016년 4월 17일 오클랜드한인교회 2016-04-16 7546
58 하늘 시민권_2016년 4월 10일 오클랜드한인교회 2016-04-09 75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