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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도행전에는 성령 체험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도행전 2장에는 오순절에 사람들이 다락방에 모여서 함께 열심히 기도할 때, 하늘에서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고, 그곳에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이고, 그 불이 각 사람 위에 임하였다고 했는데, 이것으로 그들이 성령충만을 받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충만의 결과로 그들이 방언, 즉 외국어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지중해 연안에 사는 사람들이 다 와 있었는데, 외국어를 배우지 않은 사도들이 설교를 할 때, 각 나라 사람들이 자기들 나라 언어로 설교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4장에는 사람들이 찬송하고 기도할 때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4장에서의 성령충만한 모습과 2장에서의 성령충만한 모습이 다릅니다. 사도행전 4장에서는 2장에서와 같은 특별한 성령의 은사들(extraordinary gifts)은 소개되어 있지 않습니다. 특별 은사란 예를 들어 방언, 예언, 통역, 병고침 같은 기적 행하는 것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성령충만 이야기를 할 때 그런 특별한 은사들 말고, 일반 은사들(ordinary gifts)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의 결과 사람들이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고 구체적인 사랑의 행위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보통 성령충만을 어떤 열광적인 모습과 연관지어 생각합니다. 큰 소리로 외치며 기도하고, 방언으로 기도하고, 손뼉을 치면서 열심히 찬송 부르고, 어떤 경우는 성령 받았다고 하면서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고.. 이런 모습을 보고서, “아 저 사람은 성령 받았구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이 예언 기도하고, 안수해서 병을 고치고 하면, “저 사람이 성령충만하구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특별한 은사들이 성령충만의 전체 모습은 아닙니다. 사실, 이런 특별 은사는 성령충만의 극히 일부분일 따름입니다. 초대교회 시절에 신자들 100%가 다 그런 특별 은사를 받았을까요? 모든 사람이 방언을 하고, 모든 사람이 예언을 하고, 모든 사람이 병고치는 은사, 기적 일으키는 은사가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충만의 모델인 초대교회에게도 “모든 신자들”에게 그런 특별 은사를 주시지 않고, 신자들 중 일부에게만 그런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4:31절에서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모두 성령이 충만하여...”라고 하고 나서, 그 다음에 성령충만의 결과로 일반 은사, 즉 구체적인 사랑의 능력을 설명한 것입니다.그렇다면 성령충만한 신자에게 주어지는 일반은사가 무엇일까요? 

첫째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갈라디아 5:22-23절에 보면, 성령을 마음에 모신 사람들의 삶에 나타는 구체적인 열매들이 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예수님 만나고 예수님 영접한 사람의 삶에서 당연히 나타나야 하는 것들은 사랑하고, 항상 기뻐하고, 남들과 화평하고, 오래 참고, 자비롭고, 선량하고,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덕이 입니다. 이런 다양한 성령의 열매들을 하나로 묶는 중심 은사가 바로 사랑의 은사입니다. 갈리디아서에서 성령의 열매들을 열거하면서 제일 먼저 나온 것이 있다. 바로 사랑입니다. 골로새서 3:12-14절에서는 사랑을 모든 은사를 묶어주는 띠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모든 것을 온전하게 매는 띠는 사랑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은사들 중 사랑이 가장 중요한 은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방언도 예언도 지식도 능력 행함도 사랑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놀라운 은사도 다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도 온 율법을 사랑이라는 하나의 원리로 요약해주셨습니다. 전체 성경을 하나의 계명으로 하면 뭐냐는 질문에,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중요한 것은 그런 특별 은사의 모습을 보이느냐가 아니라, 내가 주님으로 인해 정말 심령이 변하고 언어가 변하고 행동이 변하고 삶이 변했는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령충만은 예수의 영의 충만인 것입니다. 주님의 영이 내 안에서 나를 지배하고, 주님의 사랑이 나의 심령 전체를 주장할 때, 이게 성령충만인 것입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변했으면, 어떤 열광적인 모습이나 특별 은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성령충만한 사람인 것입니다. 반면에 어떤 열광적인 모습은 보이는데, 전혀 언어나 행동이나 삶이 변하지 않았다면, 특히 그 사람에게서 주님의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성령충만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성령충만은 겉으로 보이는 열광적 모습이 아니라, 예수 충만, 사랑 충만인 것입니다. 둘째 성령충만의  특징은 영혼구원에 대한 열정입니다. 성령을 체험하게 되면 예수님이 너무나 좋아집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꿀보다도 더 답니다. 그리고 이걸 나 혼자만 알고 혼자만 가지고 있는 것이 너무나 아까와서 아직 이 좋은 것을 알지 못하고 인생을 무기력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나 안타까와서 그냥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 사람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결딜 수 없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이 전도합니다. 어떤 특별 은사를 가진 사람이 성령충만한 사람이 아니라, 바로 예수 충만, 사랑 충만한 사람이 성령충만한 사람인 것입니다.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