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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구원이 선물이라고 하는 이유는 구원이 우리의 선한 행위 때문이 아니고 어떤  자격이 되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나의 죄의 짐을 지고 고난당하고 죽으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그것으로 구원의 충분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다른 방법을 사용하시지 않고 그렇게 정하신 이유는, 우리가 아무리 선한 행위를 해도 하나님의 의를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 중에 아무리 선한 사람도 스스로의 선행으로 구원받을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받는 길을 열어주시고, 우리는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고, 더 이상 지옥으로 가는 정죄를 받지 않게 된 것입니다. 기독교의 메시지는 간단합니다. 내가 어떤 종류의 죄를 지었든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고 내 삶의 주님으로 영접하기만 하면, 정죄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절대 과거의 죄 때문에 지옥에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흔들리고 구원의 확신이 흔들릴 때마다 롬마서 8장 1절의 말씀,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선언하신 그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담대하게 확신있게 신앙생활 하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Martin Lutter)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수많은 사람들의 반대와 중상과 모략을 받으면서 종교개혁을 할 때였습니다. 자기 서재에서 준비하고 있는데 마귀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종이에 가득 쓴 것을 루터에게 보여 줍니다. 그것을 한참 들여다본 루터는 질렸습니다. 앞이 캄캄했습니다. 맥이 풀리고 힘이 쭉 빠집니다. 자기가 오래 전에 지은 죄들을 낱낱이 기록해 놓았습니다. 마귀는 뒷면을 보여 줍니다. 자세히 보았더니 요사이 지은 죄를 다 기록해 놓았습니다. 마귀는 비웃은 얼굴로 루터를 향해 이것들이 사실이지 맞지 그러면서 네가 무슨 일을 해, 개혁을 해, 너나 개혁하라 그럽니다. 너나 바로 살아라. 너 이런 죄 값은 어떻게 할거냐 루터는 할 말이 없습니다. 머리를 숙이고 힘없이 앉아 있는데 뒤에서 분명하게 들리는 소리가 있습니다. 루터야 네 모든 죄를 내 피로 이미 다 씻었다. 너를 정죄 할 자는 아무도 없다. 이 음성을 듣는 순간 그는 정신이 들었습니다. 그는 크게 외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책상에 놓여있는 잉크병을 벽에 던집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다. 마귀야 내 죄는 앞집의 지붕 위에 기왓장보다 더 검고 많다. 그러나 예수의 보혈로 나는 씻음을 받았다. 누가 나를 정죄하리요” 라고 크게 외칠 때 마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확신 중에 위대한 일을 하였습니다. 우리의 주소는 예수 안입니다. 예수 안에 사는 이에게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인도의 민담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마술사가 쥐를 한 마리 키웠습니다. 하루는 그가 쥐를 가만히 관찰해 보니 쥐가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얘, 쥐야. 너 뭐가 그리 무서워서 벌벌 떠느냐?” 쥐가 대답했다. “고양이 때문에 그렇습니다. 언제 고양이가 나타나서 나를 물어 죽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술사는 그 쥐가 불쌍해서 마술을 부려 그 쥐를 고양이로 바꾸어주었습니다. 그런데 고양이가 계속해서 떨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물었습니다. “이번에는 또 무엇 때문에 떠느냐?” “개 때문에 무서워서 떱니다. 언제 개가 나타나서 내 목덜미를 물어 죽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술사는 고양이를 개로 바꾸어주었습니다. 그런데도 개가 계속해서 떨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또 무엇 때문에 떠는거야?” 그랬더니 개가 대답하는 것입니다. “호랑이 때문입니다. 눈을 감으나 뜨나 계속해서 호랑이가 어른거려서 무서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마술사는 개를 호랑이로 바꾸어주었습니다. 이제 그만하면 되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호랑이가 되어서도 벌벌 떨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떨었겠는가? 포수 때문입니다. 포수가 나타나서 총으로 쏘아 죽일까봐 그것 때문에 떤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그래서 마술사는 “너는 구제불능이다! 다시금 쥐가 되어야 되겠다.” 하고, 다시 쥐로 되돌려 놓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혹시 이런 두려움이 있지는 않습니까? 두려움은 원초적인 것입니다. 내가 어떤 특별한 위치에 올랐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주변 상황이 좋아졌다고 두려움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두려움은 구원의 확신이 있을 때 없어집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나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확신이 있을 때,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을 때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확신이 있을 때, 하늘의 평안과 담대함이 생기는 것입니다. 로마서 8:33-34절,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기 때문에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구원받아 천국에 갈 것을 확신하는 것은 우리의 행위와 자격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물론 때때로 우리는 죄를 지어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이 넘어지는 것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넘어지는 것은 천지차이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넘어질 때는 그것 때문에 정죄 받습니다. 지옥에 갑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이 넘어지면,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을 때는 절대 정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넘어진 상태로 있지 않고 반드시 주님께로 달려옵니다. 자신은 넘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더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주님, 매순간 나를 지켜주시지 않으면 저는 계속 넘어집니다. 저를 붙들어주십시오.” 기도하며 주님께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과거의 죄 때문에 정죄 받지 않고, 현재의 죄 때문에 정죄 받지 않고, 미래의 죄 때문에도 정죄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고, 그럼으로써 정죄 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하나님의 자녀로서 기쁨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