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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늦가을, 겨울의 정취를 살며시 맛볼 수 있었습니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은 쓸쓸해 보였지만, 또한 풍족해 보였습니다. 그 들판을 보노라면 시어머니를 위해 이삭을 줍던 룻의 모습이 떠오르고, 교회에서 들려오는 저녁 종소리를 들으며 들판에서 두 손을 모으는 부부의 모습이 담긴 밀레의 그림 <만종>이 떠오려 집니다. 예쁘게 단풍이 들고 이젠 낙엽 지는 가을은 우리 삶을 온통 사로잡고 있던 인간의 욕심을 떨구어 내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라고 손짓합니다. 한국 시간으로 지난 수요일 저녁에 포항에 지진이 있었습니다. 포항 한동대와 흥해에서 사역하고 있는 형제들의 안부를 묻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과분한 은혜를 누리고 살지만 우리의 환경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눈물겨운 순간도 있었지만 그만큼 위로도 주십니다. 마음이 무거운 순간도 있지만 그 짐으로부터 자유하는 기쁨도 주십니다. 세상천지에 혼자인 것 같이 쓸쓸한 순간도 있었지만 말없이 다가와 품이 되어준 이들 또한 있습니다. 건강이 여의치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 때문에 더욱 생을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성도인 우리가 진정으로 드려야 할 감사는 환경 그 이상이어야 합니다.

감사에는 세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첫 번째 차원은 "환경적 감사"입니다. 지난번 SAT 때에도 대강 공부했는데 점수가 그럭저럭 나왔어요",너무나 예쁜 여학생을 애인으로 만나게 됐어요. 친구 병철이는 그 여학생을 애인 삼으려고 그렇게 따라다녔어도 안됐는데, 저는 커피 한잔에 내 애인으로 만들었어요. 일이 잘 풀리는데 대해 감사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안 아프고 건강한 것에 대한 감사 같은 것은 환경적 감사입니다. 이러한 감사만 드린다면, 늘 감사할 수 없을 것입니다. 환경 속에서 감사한 일보다는 어려운 일들이 더 많습니다. 다음으로 "심리적인 감사"가 있습니다. 철학적인 감사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으나 어느 날 가만히 생각해보니 감사한 일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물 한잔 쉽게 마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소화기 계통에 문제가 있어서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고 있다가 정말 기적적으로 치료가 돼서 수술 후 마시는 물 한 모금에 펑펑 우는 사람 같이, 살아있다는 새로운 깨달음, 사랑하는 친구와 가족이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 등이 솟구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을 심리적인 감사라고 합니다. 더 나아가 "신앙적인 감사"가 있습니다. 앞의 두 가지 감사와는 상관없습니다. 고난 가운데 있을 수도 있고 견디지 못할 힘든 일 가운데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인도하시는 목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사하고 인생의 골짜기와 넘어야 될 강들이 있지만 결국 주님의 인도함 따라 걸어가는 삶의 여정에 불과하다며 늘 감사하는 신앙적인 감사입니다. 이 감사는 전천후의 감사입니다.

우리 중에 한해를 돌아보며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아파하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불평과 원망 가득한 나를 향해서 바로 네가 감사해야 할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삶 자체가 주님의 은혜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감사를 드리는 것은, 과거의 삶을 돌아보며 과거와 현재에 대해 함께 감사하는 삶이 됩니다. 조금 어려운데 이해하시겠습니까? 성경 말씀대로 설명해 드리면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항상 감사하라, 항상[Each case] 하나하나 어떤 경우에든지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감사하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우리 삶 자체가 주님의 은혜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라는 또 다른 이유는 감사 속에 어두운 불행을 이겨내는 놀라운 삶의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할 때 감사한 인생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중세 어느 수도원에 이런 글이 있었다고 합니다. 감옥과 수도원은 너무나 많은 환경적인 유사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감옥은 불평과 원망으로 하루를 열어가고 수도원은 감사와 찬양으로 하루를 시작하는데 있습니다. 문제는 수도원이 감사를 잃어버리면 언제든지 감옥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감옥에서 감사를 찾을 수 있다면 바로 그 감옥은 수도원이 되는 것입니다.

'TV동화 행복한 세상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책 중에 미국 디트로이트에 있었던 풍선장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풍선장수 아저씨가 수소가 든 빨간 풍선, 파란 풍선, 노란 풍선을 샘플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아이들이 몰려듭니다. 아저씨 나도 하나 주세요. 정말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그런데 검은 풍선은 팔리지 않았습니다. 어느 흑인꼬마가 아저씨에게 와서 저 검은 풍선도 하늘을 날아갈 수 있나요? 질문의 의미를 풍선장수 아저씨는 알았습니다. 갑자기 검은 풍선에 수소를 넣고 다 풀어서 공중으로 날려 보냈습니다. 검은 풍선이 하늘로 날아갈 때에 아이는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칩니다. 풍선장수 아저씨는 어린 꼬마의 어깨에 손을 얹고 얘야, 이 풍선이 하늘로 날아갈 수 있는 것은 풍선 속에 무엇이 들어가느냐에 달린 것이지 색깔에 따라 날아갈 수 있고 없는 것이 아냐. 아저씨의 한 마디는 흑인 꼬마의 열등감과 두려움을 다 씻어버렸습니다. 맞습니다. 환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환경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에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