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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연못가에 개구리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개구리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을 보며 부러워했습니다. “야, 저렇게 하늘을 나니 땅에 있는 것들을 한 눈에 내려다보겠구나. 얼마나 좋을까? 나도 저렇게 날아보았으면 참 좋겠는데...” 이런 생각을 하다가, 어느 날 하늘을 날고 있는 새 한 마리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새야, 내 부탁을 좀 들어줄래? 여기 나뭇가지가 있는데, 내가 한쪽 끝을 입으로 물고 있을 테니, 네가 다른 쪽 끝을 물고서 날라 주면 안 되겠니? 내가 하늘을 날 수 있게 좀 도와주라.” 새는 이 부탁을 들어 주었고 그 개구리는 하늘을 날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신이 났습니다. 하늘 밑을 보니 너무 좋았습니다. 이 광경을 올려다보는 다른 개구리들이 부러워하면서 그 개구리를 보며 감탄하는 것이었습니다. 밑에 있는 개구리들이 물었습니다. “야, 그런 기발한 생각을 누가 했니?” 하늘을 나는 개구리는 입이 근질근질하던 차에 참다못해서 한 마디 했습니다. “내가!” 바로 그 순간에 개구리는 땅바닥으로 떨어져서 죽어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교만하게 한 마디 자랑을 하려 했던 것이 정말 철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 이솝 우화는 동물에 빗대어서 우리에게 사람의 참 모습을 보여주는데, 철이 들 든 사람들이 꼭 이 개구리와 같다는 것입니다. 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쓸데없는 교만을 부리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하고, 시기심에 이끌려 엉뚱한 짓을 하다가 눈총을 받기도 하고, 기다리지 못해서 원하는 것을 더 얻지 못하게 되고, 또 분노를 참지 못해서 교회 전체를 힘들게 하는 예도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왜 이렇게 철없는 일에 휘말리게 될까요? 그 이유는 마음의 할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외형적으로는 육체의 할례와 같은 종교예식을 행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내면이 변화 받지 못한 가짜 신자인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사람들이 할례를 반드시 받아야 했습니다. 할례를 받지 못하면 유대인이 아니고, 유대인이 아니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어서 구원받지 못한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할례는 개인적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할례는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할례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할례에 합당한 마음가짐과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 즉 구원받은 백성의 정체성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약 사람들에게 육신의 할례를 주신 이유는 가나안의 사람들과 구별되는 그런 몸의 표식을 통해서, 마음가짐도 그렇게 구별되고 삶도 그렇게 구별되어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답게 똑바로 살라고 하시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제대로 된 할례는 마음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마음에 할례를 베푸는 것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차선책으로 육신에 할례를 베풀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그렇게 육신에 할례를 받는 사람은 이 의미가 마음에 할례를 받는 것으로 이해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이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철이 없어서 엉뚱한 일을 하게 되는 것이고, 이걸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예수님께로 인도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마음에 할례를 받은 사람은 주님을 철저히 신뢰하는 참 믿음이 있습니다. 세상의 압력이 아무리 거세도, 주님이 안 하면 나도 안 하고 주님이 하면 나도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은 사람은 천국의 소망을 굳게 붙잡습니다. 동시에 천국에 도달하기까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켜주시고 인도하실 것을 확신하며 담대하게 살아갑니다. 아무리 어려운 환란이 닥쳐도 그 가운데서도 넉넉히 이기며 살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마음의 할례를 받은 사람의 특권인 것입니다. 마음에 할례를 받은 사람에게는 온전한 사랑이 있습니다. 로마서 13:10절,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말씀의 완성이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이웃을 온전히 사랑하면 성경을 완성한 것입니다. 마음에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은 참 신자가 되는 것이고, 그런 참 신자는 겸손과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해서 일순간에 성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령의 은혜를 통해 겸손과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소유하게 되었다고 해서, 단시일 내에 완전히 예수님 같이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변화 받고 마음의 할례를 받았다는 의미는 내 안에 있는 육의 성질이 치명타를 입었다는 뜻입니다. 암을 잘라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암을 제거한 후에 우리가 계속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암이 다시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결의 은혜 즉 마음의 할례를 받았더라도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영적인 암이 다시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6절에 보면, “너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마음에 선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우리 내면에 할례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순종을 통해 결국 그리스도의 날까지 완성해주실 것입니다. 겸손과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열심을 통해 내면의 할례를 완성하여 나아가길 원합니다.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