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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교회에 나올까요?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가 우리의 정신수양을 위하거나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서 나올까, 기분전환을 위해서 나올까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존재 이유는 내가 옛사람에서 새사람으로 바뀌어 지는 것을 위해서입니다. 죄로 인해 부패한 내 본성이 예수님의 은혜로 변화받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내가 완전히 새사람으로 변화되도록 하기 위해 기독교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학에서는 이런 본질적 변화를 중생(rebirth), “거듭남”이라고 말합니다. 거듭남이란 단어는 칭의(justification,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것)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칭의는 하나님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 밖에서’ 우리를 위해 죄 사함의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반면에 거듭남은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서’ 우리의 타락한 본성을 새롭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논리적 순서로 보면, 칭의가 거듭남보다 먼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 자신의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온 인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은혜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서 걷혀지게 되는 것이고, 그런 근거로 하나님의 영이 내 마음속에서 역사할 때 내가 거듭남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적으로 볼 때는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먼저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적인 순서로 보면 이 둘이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총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순간 그와 동시에 내 안에서는 성령으로 거듭나는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는 것이 칭의라면, 칭의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내 영혼 속에서의 본성적 변화, 즉 거듭남인 것입니다. 그래서 거듭난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이미 거듭난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철학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많이 배운 사람만이 연구해서 알 수 있는 분이 아니라, 보통 사람도 체험으로 알 수 있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람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바람이 부는 것을 몸으로 체험하여 알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어떻게 성령이 나에게 역사해서 거듭나게 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믿음으로 그런 거듭남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체험이 있고 난 후에는 나의 내면과 외적인 삶이 바뀌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정말로 예수 믿고 변했느냐 아니냐 이지, 내가 기독교를 이해했느냐 이해하지 못했느냐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해하기 이전에 체험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니고데모는 이성적으로 거듭남을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봐서, 자신이 배운 지식에 비추어봐서, 이해가 되면 믿고 이해가 되지 않으면 믿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인간의 능력으로 알 수 없는 것이고, 오직 체험으로만 알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상황을 보면, 이방인들 중에 유대교로 들어오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때 유대인들이 그런 사람들에게 요구했던 것은 먼저 세례식을 행하고 그 다음에 할례를 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이 이렇게 세례식을 행할 때 사람들은 “거듭난다”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세례는 물로써 과거를 씻는다는 의미, 즉 물의 예식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상직적 의미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세례예식을 거친 이방인들을 가리켜 “거듭났다”고 표현했고, 니고데모도 이런 관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세례는 어디까지나 세례에 참여한 이방인의 자발적인 의지 혹은 결단의 차원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나는 이제부터 이방인의 길을 버리고 유대인의 길을 택합니다. 이제는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기를 바라고 결단합니다.” 이런 의미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세례를 통한 “거듭남”을 이런 차원에서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에 대해 설명하셨을 때, 제대로 이해를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이 물을 통과하는 육적인 거듭남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영혼이 성령으로 거듭나는 영적 거듭남을 말씀하신 것인데, 니고데모는 자신의 기존 지식에 의지하여 육적인 차원의 거듭남만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람을 예로 들어서,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런 거듭남을 경험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내적, 외적 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영적으로 거듭날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대표적으로 우리의 속사람의 변화를 들 수 있습니다. 내면의 동기의 변화입니다. 거듭나기 이전에는 나의 의지와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살았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사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세상을 바라보며 나를 사랑하며 살았는데 이제는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거듭나지 못하면 거룩해질 수 없습니다. 거룩하지 못하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즉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여기서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표현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거룩함을 통해 천국에 들어갑니다. 요한복음 3장 3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하나님께서 거듭남의 은혜를 주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마침내 여러분들 천국으로 인도해주실 것이다.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