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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와서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읽었던 그랜드 캐년을 방문했습니다. 황홀하리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그랜드 캐년은, 땅이 움푹 패인 상처의 결과로 형성된 지축의 변화였습니다. 깨어진 상처가 깊은 부분일수록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가까운 지역의 요세미티 폭포를 보면서 감탄했습니다. 글레이셔 포인트를 통해서 빙하지역의 깨어짐으로 형성된 계곡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글레이셔 포인트에서 보이는 대 빙하기의 흔적을 통해서 깨어짐 때문에 상심하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머릿속까지 들어옵니다. 지난 월요일, 오후 갑자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고 조상호 장로님을 추모하면서 정말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그 상실과 아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지만 추모예배를 통해서 장로님의 살아생전의 모습을 추억하게 될 때에 행복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처럼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한의사와 스승으로 아버지와 형님으로 기억되는 장로님이었습니다. 깨어짐이 없다면 요세미티의 계곡도 폭포수의 영광도 없었을 것입니다. 찍혀도, 찍혀도 향을 발하는 향나무가 있습니다. 깨어짐을 통해 누릴 수 있는 은혜가 있습니다. 깨어짐은 아픔이고 고통이고 슬픔입니다. 그 흔적은 상흔(傷痕)입니다. 몇 년 전 여동생의 혈액종양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에 여러 생각을 하였습니다. 동생은 의사로부터 처음에 재생불량성빈혈, 혈액종양이라는 판정을 받고 병원을 나설 때 그 환한 하늘이 이렇게 어둡고 컴컴하게 느껴졌던 적이 없었답니다. 그리고 차를 타고 오면서 '왜 나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거지' '왜 우리 집안에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하나님이 너무 원망스럽게 느껴지고 '도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렇게 하시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골수이식, 조혈모세표 이식을 하면서 하나씩 인생의 진정한 감사들을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그저 입으로만 감사하다고 얘기하기가 너무 죄송해, 이제 이 감사제목들을 하나씩 갚으면서 평생 살아가야 겠구나 다짐을 한 후에 속회와 구역식구들을 전심을 다해 섬겼습니다. 울 수도 없었답니다. 항암치료로 인해 눈에서 눈물이 나오면 눈알이 빠지는 것 같아 너무 아파서 늘 눈물을 참아야 하는 것입니다. 병환과 싸우면서 하나님 앞에 다시 서게 된 성도들의 고백이 참 마음을 울립니다. 목사님! “내 의지와 고집, 옅은 지식까지 주님의 십자가에 내려놓을 수 있게 되어 감사를 드립니다. 깨어짐의 시간, 변화의 시간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그 충격적인 질병의 선고와 그 고통스런 수술을 통해서 하나님이 무엇을, 어떻게 살아가기를 원하시는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겪는 고통들을 가만히 보십시오. 정말 인생은 고통과 고난의 연속입니다. 인생에 다가오는 어려움과 고난에는 그 원인이나 뜻을 알지 못하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자인지를, 내가 인생의 주인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아간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과정이 ‘내려놓음’입니다.

대학부에서 신앙생활할 때 한 형제가 겨울수련회의 주제가를 지었습니다. “옥합이 깨어짐 같이 우리가 깨어질 때/ 주님의 사랑 주님의 구원/ 세상에 퍼지리” 라는 가사였습니다. 깨어짐은 우리 신앙의 울을 통해 드러납니다. 사람은 깨어지는 것을 싫어합니다. 고통이 뒤따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신앙생활은 깨어짐을 통한 역전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깨어지셨습니다. 깨어진 예수님의 몸에서 물과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반석이 깨어짐으로 생수가 쏟아지듯, 예수님의 몸이 깨어질 때 생수가 쏟아지고, 보혈이 쏟아졌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깨뜨려 살과 피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성찬은 깨어짐의 식탁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깨뜨려 나누어 주셨습니다. 헨리 나우웬은 “깨뜨리고 부스러뜨리지 않으면 나누어 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은 떡을 손에 잡고 깨뜨리시고, 부스러뜨려 나누어 주셨습니다. 나눔은 깨뜨릴 때 가능합니다. 사랑이란 가장 소중한 것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옥합을 깨뜨린 여인은 자신의 소중한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부어드렸습니다. 옥합을 깨뜨림으로 주님을 사랑했고, 주님을 위로했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외롭고 힘든 예수님의 마음을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옥합은 깨뜨리기 전까지 향을 발하지 못합니다.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을 위로한 여인의 아름다운 사랑은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 깨어짐으로 생명이 흘러나오고, 깨어짐으로 향기가 흘러나옵니다. 남이 깨뜨리기 전에 스스로 깨뜨릴 때 더 큰 은혜와 감격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자신을 깨뜨리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생애는 향기로운 것입니다. 누군가 “스스로 깨뜨리면 병아리가 되고, 남이 깨뜨리면 후라이가 된다” 고 말했습니다. 마리아가 향유 옥합을 예수님 발에 부을 때처럼 가슴이 저린 사랑과 기대가 있습니까? 우리가 늘 부르는 찬양 가사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내게 있는 향유 옥합 주께 가져 와- 그 발 위에 입 맞추고 깨뜨립니다. 나를 위해 험한 산 길 오르신 예수- 걸음마다 크신 사랑 새겨 놓았네.♪”


토마스 칼라엘은 평생 살면서 자기 아내에게 수고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내가 어느 날 병들어서 죽었습니다. 그는 그 시체를 붙잡고 울부짖었다고 합니다. "여보, 5분만 눈을 떠주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 이 말을 한번 꼭 해주고 싶어." 귀한 기회를 놓쳐버리고 안타까워하고 몸부림칠 때가 있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모든 곳에서 기억이 되고 기념이 될 만한 아름답고 가치 있는 삶, 옥합을 깬 여인처럼 하나님 사랑하며 살다가 하나님 앞에 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