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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몬드 다리를 건너 뮤어 우드 국립공원을 갔었습니다.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워싱턴 주까지 이어지고 있는 레드우드 나무들을 보았습니다. 삼나무의 일종인 세콰이어과에 속하는 레드우드는 평균 80미터 높이 자란다고 합니다. 큰 나무일수록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 나무들은 가무는 해에 더욱 뿌리를 깊이 내린다 합니다. 서부지역의 목회자들이 이번 수양회로 모이는 곳이 레드우드국립공원입니다. 국립공원이 아름다운 것은 산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 속이 뿌리내린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 때문입니다. 큰 나무일수록 뿌리를 깊이 내리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가무는 해에 더욱 뿌리를 깊이 내립니다. 가무는 해에, 나무는 위로 자라고, 옆으로 자라기보다 아래로 뿌리를 깊이 내리게 됩니다. 비가 많이 오지 않기에 나무는 뿌리를 깊이 내려 깊은 땅 속에 있는 생수를 끌어 올리게 됩니다. 가무는 해에 나무는, 뿌리를 깊이 내리는 중에 더욱 굵고 큰 나무로 성장하게 됩니다. 폭풍우에도 뽑히지 않을 만큼 깊은 뿌리를 가진 큰 나무로 성장하게 됩니다. 고통의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더욱 깊이 뿌리를 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전 인류에게 안식을 제공할 만한 큰 나무가 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인생을 삽니다. 아브람이 고상한 아버지의 이름에서 열국의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이것은 결단의 문제입니다. 부르심에 합당한 삶은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브람으로 사느냐, 아브라함으로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시험을 이기지 못하면 결국 썩는 양식을 위해 일생 동안 땀 흘리다 허무한 인생으로 마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산하지 않은 허무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르심에 소명을 따라 나무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지난 고난주간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예수님을 향나무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외로운 나무처럼 사셨습니다. 나무는 외롭습니다. 나무는 고독합니다. 나무는 홀로 서 있습니다. 나무는 말이 없습니다. 나무는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듣지만 말이 없습니다. 나무는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몸부림치는 법이 없습니다. 자신이 선 자리에서 자족하는 것이 나무입니다.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채찍에 맞으셨고, 가시 면류관을 쓰셨습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시고, 몸이 상하신 것은 우리의 허물을 위함이었습니다. 더욱 풍성한 열매를 맺어 우리를 부요케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망고 나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망고 나무에 망고가 열리면 아이들이 돌을 던져 망고를 따 먹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 때문에 돌을 많이 맞은 해는 망고 나무가 힘들어하지만 그 다음 해에 더 풍성한 결실을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돌을 많이 맞을수록 더욱 튼튼해지고, 더욱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 망고 나무입니다. 돌을 많이 맞은 망고 나무처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많은 매를 맞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때린 매, 하나님 아버지께서 때린 매를 모두 맞으셨습니다. 많은 매를 맞으신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매를 많이 맞으신 예수님이 쓰러지신 것 같았는데 다시 일어나 부활의 영광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은 소명이 길이었습니다. 어려운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이 축복의 길이었습니다. 말없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이 정로였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지름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이 역설적이지만 가장 쉬운 길이었습니다. 헨리 밀러는 “모든 것에는 지름길이 있다고 믿는 자에게 우리가 배우는 가장 큰 교훈은, 결국 가장 어려운 길이 가장 쉬운 길이라는 것이다.”고 말합니다. 십자가의 길이 곧 부활의 길이었습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그래서 십자가가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덴버에서 로키 마운틴을 자주 올라갔었습니다. 로키산맥 해발 3,000미터 높이에 수목 한계선인 지대로 인해 나무들의 종류와 모양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 지대의 나무들은 매서운 바람으로 인해 곧게 자라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한 채 있어야 합니다. 이 나무들은 열악한 조건이지만 생존을 위해 무서운 인내를 발휘하며 지냅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가장 공명이 잘되는 명품 바이올린은 바로 이 '무릎을 꿇고 있는 나무' 로 만든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영혼을 갖고 인생의 절묘한 선율을 내는 사람은 아무런 고난 없이 좋은 조건에서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 온갖 역경과 아픔을 겪어온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향나무처럼 사셨습니다. 향나무는 찍혀도 찍혀도 향을 발합니다.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에 향을 발라줍니다. 향나무는 흉기를 향기로 바꾸어줍니다. 예수님의 향기는 용서의 향기였습니다. 사랑의 향기였습니다. 축복의 향기였습니다. 인내의 향기였습니다. 부활절이후 세 번째 주일을 맞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흉기가 향기로 바뀐 사랑의 현장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자신을 흉기로 찌른 사람들을 용서하셨습니다. 힘들어도 예수님처럼 살길 원합니다. 그 길만이 평강의 길입니다. 복된 길입니다.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