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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초등학교를 갈 때에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동네와 동네를 잊는 개울을 건너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징검다리를 놓아서 건너서 다닐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시간의 강물을 건너는 데도 징검다리가 필요합니다. 살아온 나날을 돌아보면 우리의 기억 속에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있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기쁨과 슬픔이 있었지만 우리의 기억에 많이 잊혀 갑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에겐 전쟁과 분단의 경험이 뚜렷합니다. 사람도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다리를 잊는 사람과 벽을 쌓는 사람입니다. 지난 4월 27일, 우리는 분단된 조국의 판문점에서 만남과 대화, 종전 선언을 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저는 판문점과 평화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에 평화통일과 선교하는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다리를 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할 수 있으면 국가 간에 사이가 좋도록 다리를 놓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펜젤러나 언더우드 목사님 같은 분들은 한국과 미국이 서로 먼 나라처럼 지낼 때 양국 간에 다리를 놓아준 분들입니다. 디아스포라 한인으로 살면서 우리는 직업적 외교관은 아니지만 이미 타문화권에 살면서 민간대사가 되어서 나라 간에 아름다운 다리를 놓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나라와 나라 사이에 벽을 쌓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에 사시는 교포들 중에 만에 하나 범법행위를 할 경우 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대해서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국가 간에 벽을 쌓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일은 다리를 잊는 관계와 벽을 쌓는 관계로도 풀어 볼 수 있습니다. 다리 놓는 관계의 가장 큰 특징은 서로 평화롭게 만들고 화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징검다리 하나가 생김으로 마을이 연결되고 다리 하나가 생김으로서 절벽과 절벽을 거뜬히 건널 수 있으며, 육지에서 섬으로 들어갈 수도 있듯이 사람들 사이에 다리 놓는 사람은 교통하게 만들고 서로 하나 되게 만듭니다.

반면에 벽을 쌓는 관계의 가장 큰 특징은 서로 분쟁하게 만들고 불화하도록 만듭니다. 서로 쳐다보지 못하도록 만들 뿐 아니라 자기 것만 지키려는 욕심 때문에 사람들은 담벼락을 높이높이 쌓습니다. 이웃 사이에 담을 쌓는 사람 역시 자기만 생각하고 남은 배려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벽을 쌓는 사람은 이웃과 이웃 사이에 불신과 갈등과 증오심이 쌓이도록 만드는 사람입니다.

레가토(legato)라는 단어는 매력적인 음악용어입니다. 끊지 않고 부드럽고 매끄럽게 연주하라는 뜻입니다. 악보를 읽다보면 음표 위나 밑에 초승달 모양의 표가 높이가 다른 두 음표를 서로 이어주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전을 보니까 이 기호를 슬러(slur)라 부른다고 되어 있습니다. 두 개 이상의 음을 끊지 않고 부드럽게 이어서 연주하라는 뜻입니다. 생명의 본질은 연결입니다. 어느 누구도 홀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어느 분은 '탯줄'을 가리켜 생명의 레가토라고 합니다. 조국을 모국이라고 하는 것도 그 의미입니다. 남한과 북한이 이어지고 하나 되는 것은 우리의 모국이 육체적 탯줄을 이어져서 한 민족을 이루는 정신적 사랑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것입니다.

이번에 남한과 북한의 대표자들이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만났습니다. 새벽에 그 광경을 보면서 감동으로 다가온 것은 유엔이 관리하는 '도보다리'에서의 역사적 대화였습니다. 정전협정 직후 중립국 감독위가 판문점을 드나들 때 동선을 줄이기 위해 판문점 습지 위에 만든 다리가 ‘도보다리’입니다. 두 정상이 도보다리에서 친교 산책을 마친 후 배석자 없이 대화를 이어간 곳이 '도보다리'였습니다. 그 역사의 끝자락에서 의자에 단 둘이 마주보고 앉아 약 30분간 대화를 하는 장면은 아무 소리로 들리지 않았지만 통일을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지고 감동으로 다가오는 시간이었습니다. 오작교 이야기를 우리는 압니다.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그리워했던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가 아름다운 것은 정작 아름다운 것은 까막까치가 놓아주는 오작교(烏鵲橋) 때문입니다. 둘의 공간적 격절을 이어주는 사랑의 다리, 이것은 만남에 대한 갈구가 낳은 하늘의 레가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의 이음줄(slur)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로 말미암은 사람들을 하나님과 연결시켜 주신 사랑의 이음줄이십니다. 십자가가 그 상징입니다. 평화통일이 되어서 복음이 대륙을 통해서 전해지고, 세계선교의 다리를 놓는 민족이 되고, 다리를 이어가는 교회들이 되기를 더욱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이 세상을 보면 다리를 놓는 사람들보다 벽을 쌓아 올리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 인종과 인종 사이, 남자와 여자 사이, 권력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 부자와 빈자 사이, 종교와 종교 사이의 벽은 점점 더 높아져만 가는데 오클랜드교회와 성도들이 이 이민 사회의 한 복판에 다리를 놓고 역사의 징검다리를 이어가기를 소망해 봅니다.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