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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36절 주의 집에 영원히 / 20181118일 토요일 / 특새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23:6)

1. 미즈모르 레다위드 아도나이 로이 로 에흐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비네오트 데쉐 얄비체니 알 메 메누호트 예나할레니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나프쉬 예쇼베브 얀헤니 베마겔레 체데크 레마안 쉐모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우리들은 믿으면서도 왜 우리의 삶에 늘 부족함을 느낀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분께 맡기지 못하고,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믿는다고 하면서 내 생각대로 내 길을 가고 있지요. 그래서 늘 낙심하게 되고 뭔가 빠진 것처럼 생각되는 겁니다.

맥스 루케이도라는 크리스챤 작가가 가벼운 여행이라는 책을 쓰면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의 23버전을 적어 놓았어요. 제가 읽어 드릴게요.

나의 목자는 나 자신이니 언제나 부족하리로다. 내가 이 백화점에서 저 쇼핑센터로, 이 병원에서 저 요양원으로 안식을 찾아 헤매고 다니나 결코 안식을 얻지 못하리로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기어 다니며 안절부절 하는도다. 구충제에서부터 전기선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두려워하며, 어머니의 치마 고리를 잡고 늘어지기 시작하리로다. 매주 열리는 스탭미팅에 들어갈 때마다 적들이 나를 둘러 쌀 것이며, 집에 돌아간다 해도 하찮은 금붕어까지 찌푸린 얼굴로 맞을 것이로다. 내가 강력 진통제로 두통에 찌든 머리에 기름을 부었으니, 독한 술이 내 잔에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정녕 고통과 불행이 나를 따르리니 죽는 날까지 하나님에 대한 회의 속에서 영원히 거하리로다.”

아멘 아무도 안하지요. 아멘하면 큰일 나지요. 그런데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결코 못난 모습으로 살지 않아야 합니다. 믿음이 부족하면 내가 나의 목자가 되어집니다. 그러므로 내가 나를 이끌어가는 목자가 되면 우리는 하루도 편안할 날이 없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다윗처럼 믿음을 가져서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고백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굳게 믿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주의 백성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은 마지막 6절 말씀을 묵상합니다. 공동번역은 이렇게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한평생 은총과 복에 겨워 사는 이 몸, 영원히 주님 집에 거하리이다.” 다윗은 시편의 마지막에서 지금까지의 내 인생이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의 내 인생도 그 분의 도우심으로 행복할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는 자신의 인생이 하나님 때문에 행복한 평생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한평생 은총과 복에 겨워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아멘입니까? 그리 살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자신의 미래의 일에 대해 결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확실히 알 수 있고 있었던 것 하나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기필코 자기를 따라올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따르다는 말의 원래 의미는 추격하다는 의미인데, 다윗은 어떤 환난과 시련이 닥치든지 하나님의 선함과 인자하심이 끝까지 자신을 추격해서그 선하심과 인자하심의 덕을 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환난 가운데 있더라도 우리가 두 가지 사실만을 분명히 안다면 우리는 그 환난 가운데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선하신 하나님은 항상 당신의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목동 출신 목사님, 필립 켈러에 따르면 목자가 양들을 위해 두 번 큰 준비를 한다고 합니다. 한번은 여름 직전 양들을 데리고 산위의 고원지대의 방목장으로 떠나기 전이고, 또 한번은 겨울철 고원지대에서 양들을 데리고 산 아래 집으로 데리고 내려 올 때라고 합니다.

목자는 이제 겨울이 다가오면서 양떼들을 데리고 고지의 방목장에서 내려와 마지막으로 향하는 곳이 있습니다. 어디일까요? 바로 집으로 향하게 됩니다. 목자는 양들과 함께 집을 그리워하며 저 산넘어 집에서의 새로운 삶을 기대하고 하산하면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이것이 다윗의 마지막 고백이며 소원이며 바램입니다. 목자는 양을 잘 먹이고 보살피고 보호해 주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양을 데리고 풀이 있는 곳만 찾아다니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에는 목자와 양의 갈 곳은 어디입니까? 그것은 목자의 집입니다.

여러분, 만약 우리들에게 돌아가야 할 집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의 삶 가운데 즐거움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제가 어렸을 때는 울산에서 자랐는데, 지금은 큰 도시가 되었지만, 그 땐 시골이나 마찬가지지요. 아이들이랑 밖에서 놀 때 술래잡기나 다망구, 딱지치기, 벽돌치기, 사방놀이, 구슬 따먹기, 땅따먹기, 자치기도 했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한 것은 자치기였습니다.

하여튼 신나게 밖에서 놉니다. 그러나 계속 노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되어 저녁 때가 되면 각 집에서 엄마들이 부릅니다. “애야 밥 먹으러 들어와라!“ 그러면 아무리 땅을 많이 차지했어도, 아무리 딱지를 많이 땄더라도 그것을 다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을 비유하는 듯하지 않습니까? 결국 우리는 땅의 것, 육신의 것들을 뒤로 하고 부름에 순응해야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어떤 아이가 놀이에서 다 이겼다고 해도 그 아이를 부르는 이가 없다면, 돌아가야 집이 없다면, 얼마나 황망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 되셔서 가장 감격스러운 것은 그 분이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는 그 분과 더불어 돌아갈 집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이 땅에 집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너무 슬퍼하거나 섭섭해 하지 맙시다. 어차피 내가 영원히 살 집이 아니지 않습니까? 잠시 빌려 사는 것 아닙니까?

11: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과연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은 우리에게는 우리의 이 땅에서 삶이 마쳐질 때에 주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부름이 있고, 우리는 그 부름에 따라 갈 수 있는 집, 본향이 하늘에 예비되어 있다는 사실에 늘 위로 받고, 소망 가지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주보를 맡긴 인쇄소의 직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목사님, 보내주신 주보 원본에 설교제목이 빠졌는데요.” ", 미안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평소에 설교제목을 길게 쓰시는 목사님이셔서, 인쇄소 직원은 그게 다라고 생각지 않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 다음은요?” 목사님은 대답했습니다. ",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 , 알겠습니다.”

주일이 되었습니다. 주보를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단상에 서서 설교를 하려던 목사님 눈에 설교제목이 들어왔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목사님은 그 제목을 보자 설교를 시작하지 못하고 계속 그 제목만 반복하여 읽고 또 읽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목사님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성도들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 그날 예배는 설교제목 하나로 충만한 은혜를 경험한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여러분 삶의 고백이 되고, 간증이 되시길 간절히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