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오클랜드한인연합감리교회

신앙칼럼

"세계는 나의 교구다."

오클랜드한인교회 2019.05.28 09:35 조회 수 : 884



"세계는 나의 교구다." [웨슬리의 1739611일 일기 중에서]

요한 웨슬리는 잉글랜드 성공회 신부 사무엘 웨슬리의 아들로 엡워스(Epworth)에서 1703년에 태어났다. 그는 어머니 수잔나의 엄격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고,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하여 1724년에 졸업했다. 이듬해인 1725년 성공회 성직자로 안수 받았으며, 옥스포드에서 강사로 활동했다.

같은 시기에 동생인 찰스도 같은 대학에서 공부했는데, 동생에 의해 만들어진 신앙 동아리 홀리 클럽(Holy Club)’1730년부터 지도하게 된다. 이때부터 그는 경건생활의 규칙을 엄격히 따르며, 감옥과 빈민가를 돌며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과 전도를 행했다. 웨슬리와 함께 하던 이들이 규칙을 워낙 엄격히 지켰기 때문에, 옥스포드의 메소디스트(Methodist, 방법론자)’라고 불리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별명이 후에 감리교회의 시초가 되었다.

웨슬리는 마침내 옥스포드의 지식인 생활을 내려놓고 미국 남부 조지아에서 선교활동(1735-37)을 한다. 미국으로 가는 배가 항해 중 침몰직전의 위급한 상황에서 자신은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는데, 한 쪽 구석에서 찬송을 부르고, 평안을 유지하는 모라비안 교도들을 만난다. 미국 선교는 여러가지 어려움들로 인해 큰 진척이 없었고, 회의에 빠진 그는 영국으로 돌아와 모라비아 형제단을 만나게 되었는데, 뜨거운 마음이 담긴 그들의 신앙생활을 보며 자신의 형식주의적 믿음을 깊이 반성하게 되었다.

그 후 웨슬리는 모라비아 형제단의 지도자인 진첸도르프 백작과 헤른후트 공동체와 교류했고, 1738524일 올더스게이트(Aldersgate) 기도회에서 마음이 뜨거워지는체험을 하였다. 과거에 옥스포드 메소디스트로 함께하던 조지 휫필드와 협력하여 1739년부터 야외집회에서 설교했다. 또 집회들에서 평신도를 설교자로 세우기도 했다.

웨슬리는 이러한 방식으로 25만 마일을 다니며, 4만 번의 설교를 감당했다. 그는 설교에서 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이라고 이름 붙인 삶의 거룩함, 성화를 강조했다. 그는 179132최고의 것은,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