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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상대방을 알기 위해서는 그 자리에 서 보아야 합니다.

설교원고를 쓰려고 하려다가 보면 교인들에게 이 세상 한 복판에 살면서 너무 착하게 살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교회 오빠”같다라는 말을 요즘 씁니다. 교회 청년은 너무 착해 보입니다. 착하면 반편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이들을 함부로 대합니다. 반면에 좋고 싫음에 대한 가름이 분명하고, 자기 몫은 어김없이 챙기는 사람은 좀 야박해 보이기는 해도 사람들이 만만하게 대하지는 않습니다. 괜히 건드렸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시대의 기득권을 누리는 사람에게는 대단히 떫은 존재였고 눈엣 가시였을 것입니다. 전통과 ‘경건’이라는 허위의식을 가진 사람들의 울타리를 망치로 드려대니 좋아할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거짓과 위선에 대하여 분노하였던 주님이었기에 버림받은 사람들을 따뜻하게 품어 줄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일까요? 불의한 세상, 공평함이 없는 세상에 대한 거룩한 분노입니다. 불평과 불만이 아니고 참된 분노입니다. 맹목적인 분노가 아니라 평화를 위한 분노입니다. 거짓과 위선에 대한 분노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의 세례를 받을 때만 창조적인 힘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들은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는 무기력한 착한 사람이 아니라, 거짓과 불의에 대해서는 단호히 거절하면서 그 악한 일에 말려든 사람조차 사랑으로 품어 안고 새로운 세상을 이루기 위해 땀흘리는 뚝심 있는 착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선한 뜻은 현실의 장벽에 부딪혀 좌초하기 일쑤입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우리는 제풀에 지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봐야 뭐해, 세상은 그저 그렇고 그런데." 이렇게 해서 사람들의 맑은 마음은 흐려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도 싫어했던 세상을 닮고, 때묻은 기성세대의 삶을 반복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교회를 주신 뜻은 어쩌면 각 지체들이 서로의 얼굴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어주고, 영혼의 숫돌이 되어서 서로의 무뎌진 마음을 갈아주라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가 모든 피조물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새로운 세상의 모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약육강식 혹은 무한 경쟁이라는 살벌한 구호가 우리의 의식을 죄어치는 세상이지만, 돈의 많고 적음이나 사회적 신분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모두가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고 돌보는 사랑의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교회의 소명입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에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신신당부하듯 말합니다. "여러분은 믿음이 약한 이를 받아들이고, 그의 생각을 시빗거리로 삼지 마십시오."(14:1) 여기서 믿음이 강한 이는 누구이고, 믿음이 약한 이는 누구일까요? 로마 교회는 유대교적 배경을 가진 신자들과 그런 신앙적 배경 없이 기독교를 받아들인 이방계 신자들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대교적 배경을 가진 신자들은 여전히 몸에 밴 신앙적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관습은 오랜 세월 동안 몸에 밴 제2의 천성인데, 헌 옷 벗어 던지듯 할 수 있는 게 아닐 겁니다. 그들은 음식을 먹을 때도 레위기에 나오는 정결법의 규정을 따랐고, 유대교의 절기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이방계 신자들은 그런 유대계 신자들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유난을 떤다고 생각했겠지요. 혹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자유를 알지 못한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반면에 유대계 신자들은 다소 무질서해 보이고, 세속적으로 보이는 이방계 신자들을 조금은 경원시했겠지요. 그 때문에 로마 교회는 보이지 않게 금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정을 알아챈 바울은 그 두 진영이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용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음식 규정에 구애받지 않는 이들은 그렇지 못한 이들을 업신여기지 말아야 하고, 음식 규정을 지키는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을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날을 지키는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만히 보면 사람들이 서로에게 등을 돌리고 갈라서는 것은 큰 차이, 혹은 본질적인 차이 때문이 아닙니다. 사소한 문제가 사람들을 갈라놓습니다. 바울은 음식 규정을 지키는 이나 그것에 구애받지 않는 이, 혹은 어떤 날을 귀히 여기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그 근본 동기에서는 하나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주를 위하여!"입니다. 그렇지요. 두 진영 모두 주님을 잘 섬기기 위해 애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마음의 동기는 존중되어야 마땅합니다.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따지는 동안 진실은 멀리 달아나 버리고 남는 것은 서로에 대한 환멸뿐입니다. 서로의 마음을 헤아려 알아주는 것, 이것이 진정한 착함이 아니겠습니까? 생명의 본질은 '서로에게 의존함'입니다. 실체 없는 그림자가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너' 없는 '나'는 없습니다. 네가 있어 내가 있습니다. 생명의 본질은 그렇기에 '고마움'입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이 즐겨 쓰는 말은 '덕분에'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말을 하며 살고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역지사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역지사지易地思之”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상대를 알기 위해서는 그의 자리에 서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주님은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질고를 대신 지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연약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향해 겸손한 마음으로 한 걸음씩 다가갈 때 우리는 무한 경쟁과 약육강식의 세상을 살면서 굳어진 마음이 풀리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 교회가 서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가를 생각해봅니다. 오클랜드가 발전하고 있지만, 베이지역 가운데 소득이 가장 낮은 곳중에 하나였습니다. 빈민가에서 우리의 이웃의 눈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약한 이들을 사랑으로 보듬어 안음으로 우리는 참 사람이 될 것입니다. 착하기는 하지만 무기력한 신앙인이 되지 말고, 불의한 세상을 사랑의 쟁깃날로 갈아엎으면서 평화의 씨앗을 한 알 한 알 정성껏 심으며 사는 정말로 착한 신앙인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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