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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kingdom of heaven), 한자로 “천국”이란 표현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나라”라고 말합니다. 이 둘이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하나님 나라”와 “하늘나라”는 근본적으로 동일한 개념입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그 나라, 우리가 죽으면 가서 영원히 살게 되는 그 나라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경건한 유대인에게는 “하나님”이라는 말이 너무나 신성한 것이어서, 그 용어를 사용하기를 꺼려했습니다. 그래서 주로 유대인 독자를 위해 기록된 마태복음에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표현은 거의 사용되지 않고 대부분 “하늘나라/천국”이란 표현이 사용됩니다. 반면에 마가와 누가는 비유대인들을 대상으로 글을 썼기 때문에 그들의 이해를 좀 더 쉽게 하기 위해 그냥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그렇지만 표현 자체를 생각해보면 나름대로의 강조점이 약간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는 하나님이 왕이 되셔서 통치하신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라는 표현의 핵심은 하나님이 나의 왕이 되시고 나의 절대 주권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이 “하나님의 나라”는 꼭 우리가 죽어야만 가는 나라일 필요는 없습니다. 이 땅에서도 우리가 충분히 시작할 수 있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 되시고 나의 삶을 주관하신다면, 오늘 나의 삶의 영역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천국(kingdom of heaven)은 글자 그대로 하늘에 있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우리가 죽어서 그 나라에 가는데, 그 나라에서 우리는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됩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의 중심개념은 영생이다. 그런데 이 하늘나라도 우리가 꼭 죽어서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우리의 영혼 속에서도 이 하늘나라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면 우리 영혼 속에서 곧 바로 영생이 시작되는데, 이것이 바로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중심개념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영혼의 주인이 되시고 그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내가 순종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나의 삶 속에서 오늘 시작되는 것입니다. 반면 하늘나라는 중심개념이 “영생”입니다. 내가 복음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이 영생이 오늘 나의 영혼에서 시작되고 죽음 넘어서까지 지속되는 것입니다. 죽어서 가게 될 천국을 바라보는 눈을 뜨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눈이 뜨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 1:23-24에서 죽어서 천국 가는 것 보다 더 중요하고 더 유익한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땅 끝까지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여야 할 선교 완성을 위한 사명이었습니다. 그것은 이 땅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없이 천국 소망만 가지면 내세지향적인 신앙, 현실비관적인 신앙에 빠지게 됩니다.  오클랜드교회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 민족교회의 사명을 다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일제 치하 때 우리 민족의 한결같은 소망은 ‘독립’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사실, 그리스도인들의 한결같은 소망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이 나라를 사는 우리는 이 세상에 투입된 하나님 나라의 ‘독립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서로를 부를 때, “김동지, 박동지” 하고 불러야 제격입니다. 독립군들이 서로 만났을 때, 얼마나 반가왔겠으며 얼마나 사랑스러웠겠습니다. 비록 처음 만난 사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모든 것을 다 내어 줄지라도 아깝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들이 만났을 때 느끼는 감정이어야 할 것입니다. 교인들 사이에 ‘교회 안에 진정으로 마음을 나눌 친구가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교인들이 초등학교 동창이나 군대 동기만도 못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친교의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 독립군처럼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월남 이상재선생에 대한 일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날 며느리가 재봉틀을 도둑맞고 울고 있었습니다, 이상재 선생께서 그 며느리를 향하여 꾸중을 하였답니다. "너는 나라 잃고도 그렇게 울지 않더니 재봉틀을 잃고 우느냐!“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우리 마음도 이와 같음이 안타깝습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하는 그 영광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 빠져서, 세상 이익만 구하며, 아둥바둥하며 사는 것입니다. 오늘 눈을 들어 지금도 계속 다가오는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길 원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나라의 독립군들이요, 동지입니다.

영국의 한 도시에서 ‘평화’를 주제로 한 미술대회가 열렸습니다. 최우수 작품은 무섭게 떨어지는 폭포 그림이었습니다. 얼핏 보면 평화와는 아주 거리가 멀어 보이는 단순한 폭포인데, 그런데 그림을 자세히 보면, 떨어지는 폭포의 중간쯤에 불쑥 튀어나온 바위가 있고, 그 바위 위에는 어미 새가 새끼들에게 먹이를 먹이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기 새들은 세찬 물줄기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어미 새의 입에 물린 먹이만을 바라보며 입을 벌리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것이 평화입니다. 우리의 삶도 세찬 물줄기의 연속이지만,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그런 상황에서도 평화로울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기 때문인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왜 천국 소망이 희미할까요? 왜 확신이 없을까요? 살아계신 예수님이 왕되신 삶을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예수님이 왕이신 곳입니다. 예수님이 왕이신 삶을 사는 자는 예수 믿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나라 백성의 삶을 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삶 속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이제부터 구원받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성령 안에서의 의와 평강과 희락을 체험하며 살길 원합니다. 이제 구원받은 자의 특권을 누리며, 의와 평강과 희락을 체험하며 사길 원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