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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파 벨리 지역에 큰 산불이 났습니다. 집이 불타고 하늘과 땅이 붉게 물들고 생명을 잃고 이재민들이 생겼습니다. 며칠동안 하늘이 잿더미로 덥혀 있고 그 타는 냄새를 맡으며 우리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오늘 주일, 성전에 와서 머리를 숙이고 이 고난과 재난앞에서 “하나님 아버지!” 이렇게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정말 아버지로 생각하시는지요? 이 세상에서 나를 아들로 여기시고 가장 귀하게 보시고 모든 유산을 물려주실 사랑의 아버지로 생각하신 적이 언제 부터인가 기억나시는지요?  예수님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때 “아버지”란 표현을 주로 사용하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 혹은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 이런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아버지” “아빠 아버지”란 표현을 주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주실 때도 그 “아버지”란 표현을 사용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생각하고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한다면, 그러면 나는 누구일까요? 정체성의 문제는 중요합니다. 미국에 이민와서 한국인으로 사는 나는 미국인인가요? 한국인인가요? 자녀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이 미국에서 살고 있을까요? “마지널리티”로서 사는 주변인이지만 정체성은 중요합니다. 마찬가지로 나는 하나님의 아들 혹은 딸이 됩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나의 주님으로 영접함으로써, 그분의 영 즉 성령이 나에게 임할 때, 그때 내가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과 내가 하나님의 아들/딸이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다를까요? 겉으로는 같은 표현이지만, 이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직접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시지만, 우리는 간접적으로 그리고 비유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의 표현을 사용하자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친아들이신 거고 우리는 양아들 양딸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차이는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는 신과 신의 관계이지만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는 사람과 신의 관계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님의 아버지가 되신다고 할 때, 그 중심 의미는 예수님도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고 자기가 그분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을 듣고는 이것을 대단한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했스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자기가 하나님과 똑같다는 말, 즉 자기가 하나님이라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5:17-18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는 것이 ‘아버지와 자신이 똑같다는 의미’라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이 되시는지요? 우리 인간 세상에서는 내가 누구의 아들이라고 할 때, 그것은 두 사람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지 나와 아버지가 동일인물이라는 의미는 절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이 세상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절대 시작이 같을 수가 없고, 같은 공간에 동시에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구의 아들이라고 하면, 그분은 내가 존재하기 이전에 이미 어느 공간에 계셨고, 나는 나보다 먼저 세상에 존재한 그분 이후에 다른 공간에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신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아버지와 아들은 언제나 함께 같은 장소에 존재하고 그 둘은 언제나 동일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간과 공간이란 개념은 인간 세상에만 적용되는 것으로서,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 자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시간도 창조하시고 공간도 창조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으로는 하나님을 규정하거나 설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을 가리켜 “내 아버지”라고 부르시고 본인은 그분의 “아들”이라고 하실 때, 이 부자관계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가가 중요합니다. 원인과 결과의 측면에서는 성부 하나님이 성자 예수님보다 우선하지만, 실제로는 그 둘이 같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언제나 아버지가 먼저 있고 그 다음에 아들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없으면 아들도 없습니다. 또 아들이 없다고 해서 아버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들 없는 아버지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은 언제나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고 하는 말은 “나는 곧 하나님”이란 뜻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것 때문에 예수님이 신성모독을 한다고 하면서 그를 죽이려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부를 때, 예수님에게는 하나님이 일종의 ‘친아버지’이지만 우리에게는 ‘양아버지’가 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친히 낳아주신 친아들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성령으로 낳아주신 양아들/딸인 것입니다. 물론 그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자녀로서의 권리는 똑같습니다. 아버지의 것을 다 유산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바라보지 않고, 사랑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로 기죽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든든한 백이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아빠를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지 아실 것입니다. 아이에게 아빠는 완벽한 사람입니다. 아빠하고만 있으면 걱정할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떤 두려움도 없습니다. 그런데 옆집 아저씨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아빠하고는 너무나 다른 존재입니다. 우리 아빠한테는 막 안기고 등에 올라타도 되지만, 옆집 아저씨한테 그렇게 하면 큰일 납니다. “얘가 왜 그래?” 하면서 밀쳐낼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 아빠는 무조건 내편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랑이 무한하신 분이기 때문에, 내가 두려움 없이 확신을 가지고 그분께 달려갈 수 있는 것입니다. 큰 재난을 맞아서 불속에 쌓여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요. 그리고 도와 주십시요.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