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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대의 명절인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미국 최대 명절인 이 날을 맞이할 때면 개인적으로 저는 한 분이 무척이나 생각나고 보고싶습니다.

미국 유학 오기 전, 2008년 신대원 시절에 사역했던 한 교회에서 90세를 바라보시는 권사님 한분을 만났습니다. 이 교회는 40년이 넘은 교회여서 많은 권사님들이 교회 유아실에서 서로 교제도 하시고 기도도 하시면서 편안하게 자기 집처럼 드나들면서 주무시기도 하셨습니다. 특별히 이분 들 중에 저는 일명 ‘땡큐 권사님’ 이라는 별명을 가지신 권사님을 잊을 수 가 없습니다. 많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너무 건강하셨고 언제나 만날때마다 아름다운 미소와 함께 두 손을 꼭 붙잡고 이리저리 흔드시면서 “땡큐, 땡큐” 를 외치시면서 반갑게 맞이해주셨기때문입니다. 저 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 성도님들을 행복하게 만드셨던 분이셨습니다.  

늘 반갑게 인사로만 교제했던 이 땡큐 권사님과 조금 더 깊이 교제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레 교회 사찰집사님이 그만두게 되어 주일 오후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교회를 지킬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었습니다. 재정으로 넉넉치 않았던 신대원시절 일당 3만원을 더 준다는 유혹(?)에 교회 쪽방에서 6개월동안 사찰 아닌 사찰 직분을 감당하였습니다. 주일 사역을 마무리하고 모든 성도들이 떠난 후 교회를 점검하고 있었을 때면, 항상 땡큐 권사님은 교회에 계셨습니다. 언제나 저녁은 먹었는지 물어 봐 주셨고, 가끔씩 맛있는 저녁을 교회 식당에서 가져다 주시곤 하셨습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이 땡큐 권사님과 함께 교회 마당에 있던 정자에 앉아서 이런저런 담소도 나누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교제의 시간을 가지던 중, 저는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웃으시면서 “땡큐, 땡큐”를 입가에 떠나지 않게 고백하셨던, 만나는 사람을 항상 행복하게 만드시는 이 권사님에게도 잊을 수 없는 아픈 상처가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교회 많은 성도님들도 같은 경험을 가지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바로 일제 점령기라는 암흑한 시간을 보내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6.25 전쟁을 통한 아픈 상처가 있으셨던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나눠주실 때 저는 처음으로 땡큐 권사님의 무표정하고 어두운 표정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웃으시면서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하다고, 늘 자기는 부족함 없이 살고 있다면서 이렇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는 고백을 하셨습니다. 

잊을 수 없는 아픈 상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이 권사님을 땡큐 권사님으로 살게 만들었을까요?

권사님과 함께 교제했던 시간을 떠올려보면, 평범한 일상 속에서 어떻게 감사하고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삶을 살 수 있는지, 또 이로 인해서 다른사람들을 어떻게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지 늘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오클랜드교회 성도 여러분! 추수 감사절(Thanksgiving Day)을 맞이하면서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늘 감사는 잠깐이고 걱정과 근심으로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모든것이 다 주님께로부터 왔는데 왜 그렇게 모든것이 내 것인양 만족하지도, 감사하지도 못하면서 살고있을까요? 감사는 멀리에 있지않습니다. 크던 작던 늘 우리는 “감사” 를 고백할 수 밖에 없는 일상의 기적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 무척이나 저의 손을 붙잡고 “땡큐, 땡큐” 하시면서 반갑게 맞이해주시고 행복하게 해주셨던 땡큐 권사님이 보고 싶은 날입니다. 권사님 평안하시죠? 

장세원 전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