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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나를 이끌고 하나님까지 내 욕심으로 끌어당깁니다. 이런 삶은 시작은 좋은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결말은 허망한 법입니다. 부자가 되고, 출세를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자기가 왜 태어났는지, 하나님이 자신을 어디에 쓰고자 만드셨는지 전혀 모른 채 그저 살아가게 됩니다. 이런 삶은 결코 잘 사는 삶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바로 욕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욕심을 버린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 즉 자신을 버리는 것으로, 이것을 이루면 도통(道通)한 것입니다. 그런데 욕심을 버릴 수 있는 비결이 하나 있습니다. 가치관이 바뀌면 됩니다. 욕심은 가치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가치관이 바뀌면 욕심을 버릴 수 있습니다.

막내아들이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의 일입니다. 가장 먼저 배운 말이 ‘엄마’, 두 번째로 배운 말이 ‘아빠’, 그리고 세 번째로 배운 말이 ‘백 원’ 이었습니다. 형들 따라서 슈퍼마켓에 다니다가 돈의 가치를 배운 것입니다. ‘백 원 주면 사탕도 주고, 장난감 시계도 주는구나.’ 백 원의 가치를 알게 되니 욕심이 생겼고, 욕심을 이루려고 말을 배웠습니다. 그러더니 맨날 “엄마, 백 원”, “아빠, 백 원” 했습니다. 어느 날은 심방 가려는데 막내아들이 길을 막고는 “아빠, 백 원” 합니다. 그래서 백 원짜리 하나를 꺼내서 주려는데 오백 원짜리가 나왔습니다. 어쩔까 하다가 “너 오늘 수지맞았네” 하면서 그냥 오백 원짜리를 주려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백 원이 아닌 것입니다. 막내아들이 보기에는 백 원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제가 웃었더니 장난 치는 줄 알고 오백 원을 내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어서 백 원 내놓으라고 떼를 씁니다. 그때 큰아들이 와서는 “그거 오백 원이야. 백 원짜리 다섯 개야” 하면서 펄펄 뛰어도 못 알아듣습니다. 두 살짜리가 그러니 귀엽고 예쁘지만, 다 커서도 그랬다면 아마 근심이 컸을 것입니다.

간단합니다. 오백 원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백 원에 대한 욕심을 버리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욕심을 버리기 위해서는 거듭나야 합니다. 가치관이 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5). 성령 받고 하나님나라를 보게 되면 무엇이 좋습니까? 그때부터는 세상이 별것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세상은 백 원짜리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후에 그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 3:8).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세상 모든 자랑을 배설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거듭나면 쓸데없는 욕심은 다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달려가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나는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의 이 고백에는 지혜도 있고 열정도 담겨 있습니다. 저도 정말 바울처럼 살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김동호 목사 “페이스 북, 믿음의 책” 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