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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고 조휘광성도의 1주기 추모의 날을 맞이하여 고인을 추모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LA에 위치한 한 공원묘지에 유가족들과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건강검진을 받는 동안 최화경권사님의 어머님이신 장로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장로님은 한국의 수원 종로교회의 여성 장로님으로서 선윤경목사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에게 예수님을 믿는 모범을 보여 주신 귀한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마 11:28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현대말로 하면 스트레스인데, 누구나 가지고 사는 정신적인 질병이고, 현대인들이 가진 모든 유형의 질병에 직간접적인 원인입니다. 꼭 살기가 어렵고 일이 많아서 힘든 것이 아닙니다. 어느 목사님은 세상에 제일 힘든 일이 '그냥 사는 것'이라 했습니다. 아무 일을 하지 않고 쉬는 것도 며칠은 좋지만, 계속 쉬면 징역사는 것과 같아집니다.


살다보면 힘든 일에 대해서는 마음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많은 고생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때 7번의 전학이 있었는데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 철거를 당해도 보았고, 비가 오는 날 월세방에서 쫒겨나는 일도 있었습니다. 가족들의 죽음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힘든 일, 황당한 일을 만나도 특별히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산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이유는 삶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죄 때문입니다. 러시아의 기독교 작가 도스토엡스키는 “이제 죄인에게는 산다는 것 자체가 수고로운 짐이 되었다” 는 말을 하였습니다. 죄인에게는 산다는 그 자체가 힘들고 버거운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하신 것입니다.


분주한 삶에 지쳐서 쉬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삶이 너무 힘들고 어려울 때는 영원히 눈을 감고 쉬고 싶다는 생각조차 듭니다. 인간이 갖는 쉼에 대한 욕구를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또 인간은 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쉬어야 하는 존재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쉬어야 하는데도 쉬지 못할 때 우리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이상 증세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쉼, 안식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인생의 짐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대형 트럭을 가지고 와서 “다 실어” 하지 않으십니다. 형편이 어렵고 힘들어도 정말 믿는 대상이 생겼으니 삶이 너무나 쉬워진 것입니다. 마음이 쉼을 얻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형편인데도 태연한 사람을 보면 흔히 “저 사람, 어디 믿는데가 있나봐”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상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쉬게 하리라” 하시고는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하신 것입니다. 멍에가 힘들어서 예수님께서 “오라 쉬게 하리라” 하셔 놓고서 왠 멍에를 주십니까?


예수님의 멍에는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목사와 함께 사는 것도 끔찍한데,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어떻게 사나?’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은 생각처럼 무겁지 않습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를 구속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이 위로요 힘이요 구원입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우리를 구속하는 멍에가 아니라 우리를 자유케 하는 멍에입니다. 삶이 힘드냐, 일이 많으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수고스러움과 무거움은 누구에게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오직 구주이신 예수님 안에 거하느냐 아니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과 멀어지면 삶은 무거워 견딜 수 없게 됩니다. 죽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 거하면 삶은 가벼워집니다. 일은 더 많아지는데 삶은 더 쉬워집니다. 그러므로 힘든 세상에서 참 평안과 안식을 얻으려면 세상과 씨름하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잠잠히 예수님 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부담스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게 배우라” 어떤 사람은 배우라 이 말만 들어도 또 스트레스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공부하라”는 말이 아니라, “고민하고 두려워 하고 몸부림치지 말고, 나만 바라보고 내가 하는데로 만 해” 하는 말입니다. 주님은 지금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혼자 애쓰지 말고 나와 동행하자! 나를 바라봐, 나만 따라와! 내가 하자는대로 해! 응, 알겠어”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면 여러분의 마음은 쉼을 얻을 것입니다. 삶이 쉬워지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99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빌리 그레엄 목사님이 어느날 아들 프랭크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아들아, 언젠가 너는 신문에서 내가 죽었다는 뉴스를 보게될것이다. 그때, 속지마라. 나는 죽지 않는다. 다만, 주님과 영원히 살아있다는것을 기억해라." 빌리 그레엄은 죽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그리고 천국에서 그토록 사랑했던 주님과 영면하고 있을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수고하고 힘든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답은 임마누엘 예수님입니다.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