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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인생의 동굴을 지나가는듯한 성도님들을 만나면서 제게 부탁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목사님, 저에게 이런 아픔이 찾아 왔습니다. 기도해 주십시오.” 이 말을 들을 때 우리는 손을 잡고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함께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일을 시작하십니다. 기도는 천국의 열쇠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비밀스런 천국의 문이 열립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이름이 천국의 열쇠이고 기도의 문을 열고 닫는 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주님께서 우리가 기도한 것을 따라 일하십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요 14:13).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하나님으로 우리를 위해 일해 주시도록 간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영적인 일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동안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일들이 일어납니다. 천사가 동원됩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움직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따라 하나님은 사단을 물리치십니다. 병자를 낫게 하십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주와 땅이 진동하고, 천국이 움직입니다. 요동치는 바다가 잠잠케 되고,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게 됩니다. 소낙비가 멈추기도 합니다. 우리가 무릎을 꿇을 때 사단은 벌벌 떱니다. 마귀의 궤계는 무너집니다.


우리에게 갑자기 아픔과 절망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육체를 가진 우리에게 신앙의 위기가 있습니다. 기도의 위기는 피곤할 때 찾아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의 위기는 하나님의 약속이 너무 더디 응답되는 데 있었습니다. 소원이 더디 이루어질 때 우리는 피곤해 집니다. 그때 우리는 기도의 의욕을 잠시 상실하게 됩니다. 마라톤 경주자도 어느 지점의 가면 힘든 지점이 있듯이 기도할 때도 그렇습니다. 기도는 마라톤과 같습니다. 단기간에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때로 우리가 드린 기도가 일순간에 응답되는 것 같은 경험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기도 응답의 배후에는 수많은 날들의 마라톤 기도가 쌓여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어령 교수님이 쓴《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을 보면 간절함이 무엇인지 알게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딸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쓴 이 교수님의 간증이 담긴 책입니다. 어느 날 이 교수님은 딸이 실명위기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하와이로 날아갑니다. 망막박리로 딸이 얼마 안 있어 실명하게 될 것이라는 소식은,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애절하게 했습니다. 하와이를 방문했던 주일에 딸은 아버지에게 원주민 교회에 함께 동행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 교수님은 실명할지도 모르는 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원주민 교회 주일 예배에 참석하게 됩니다. 그들이 부르는 애절한 찬송 소리에 마음이 녹았습니다. 그들의 찬송 소리와 딸의 고통스런 현실을 생각하면서 이 교수님은 처음으로 땅바닥에 엎드려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하나님 이 찬란한 빛과 아름다운 풍경. 생명이 넘쳐나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당신께서 만드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왜 당신의 딸 민아에게 그 빛을 거두려 하십니까. 기적을 내려달라고 기도드리지 않겠나이다. 우리가 살아서 하늘의 별 지상의 꽃을 보는 것이 그리고 사람의 가슴에서 사랑을 보는 것이 바로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매일 매일 우리는 당신께서 내려주시는 기적 속에서 삽니다. 그러니 기적이 아니라 당신께서 주신 그 기적들을 거두어 가지 마시기를 진실로 기도합니다. 만약 민아가 어제 본 것을 내일 볼 수 있고 오늘 본 내 얼굴을 내일 또 볼 수만 있게 해주신다면 저의 남은 생을 주님께 바치겠나이다. 아주 작은 힘이지만 제가 가진 것이라고는 글을 쓰는 것과 말하는 천한 능력밖에 없사오니 그것이라도 좋으시다면 당신께서 이루시고 저 하는 일에 쓰실 수 있도록 바치겠나이다.” (이어령. 「지성에서 영성으로」 열림원. 122-123면) 딸을 하나님이 데려 가셨지만 그로 인해 간절함이 무엇인지 알게 된 이어령교수의 간증이고 고백입니다. 새벽마다 무릎을 꿇는 이유는 간절함 때문입니다.


멀리 길을 갈 때는 함께 가야 합니다. 홀로 뛰면 힘이 들지만 함께 뛰면 힘이 덜 듭니다. 마라톤을 뛰는 선수들도 함께 뛰게 될 때에 자신의 호흡을 조절하고 페이스를 조절합니다. 빙상선수들은 팀추월이라는 경기에서 세 명이 함께 뛰면서 자리를 바꾸어 가며 경기를 조율하고 바람과 각도를 조절합니다. 세 명이 같이 들어올 때 제일 마지막 선수가 들어오는 것이 경기의 기록입니다. 그렇기에 한 명이 결승선에 빨리 들어오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팀이 같이 결승선을 통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함께 뛰어야 힘이 덜 듭니다. 더 오랜 시간을 끝까지 뛰어야 지탱할 수 있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홀로 기도하는 것보다 합심해서 기도할 때 피곤과 낙심을 이길 수 있습니다. 새벽기도회와 수요찬양예배를 통해서 합심기도를 하고 개인기도를 합니다. 서로 팔을 붙들어 줄 때, 피곤한 모세의 기도의 팔을 붙잡아 준 아론과 훌 처럼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제목을 가지고 끝까지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그 간절함 위에 응답을 주십니다.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