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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235/ 내 잔이 넘치나이다 / 20181116일 금요일 / 감사특새5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자기와 함께 하시고, 지팡이와 막대기로 갈 길을 인도하시고, 그리고 자기에게 도전하는 세력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시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 위에 더 넘치는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삶과 믿음의 잔이 넘치는 두 가지의 은혜를 말합니다. 첫째는 원수들의 목전에서 자신에게 상을 차려 주신 것이었고, 둘째는 기름으로 자신의 머리에 바르신 것이었습니다. 이 넘치는 은혜를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먼저 5절에 언급된 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번 살펴보십시다. 혹시 이 상급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오시지 않았습니까? 예전 개역성경은 내게 상을 베푸시고라고 번역을 해서 상급이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요. 그러나 이 상이라는 말은 평범한 밥상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식사를 위하여 식탁으로 사용되는 상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골짜기를 통과한 양과 같은 우리들에게 자비와 사랑으로 최상의 상을 준비해 주십니다. 이런 대접은 음산한 골짜기의 체험을 한 양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목자의 전적인 은혜인 것입니다. 원수들에게는 상이 베풀어지지 않고, 양 혼자만, 우리들이 초대를 받은 것입니다. 목자의 넘치는 상은 오직 양들을 위한 것입니다.

원수들의 눈에도 너무 놀라운 존재로 비칠 것입니다. 계곡을 지나갈 때는 신음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밤을 지새는 허약자로 보였었는데 ... 이젠 그런 모습이 아니라는 겁니다. 때가 되면 주께서 인정해 주시고 상을 차려 주실 것입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예나 지금이나 한솥밥을 먹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특별한 인연과 유대를 확인하고 드러내고 굳게 하는 기회입니다. 그러므로 같은 밥상에 앉는 것은 배고픔을 채우는 것 이상의 정신적이고 영적인 행위입니다. 식사는 생명을 먹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랜 옛날에는 식사를 희생제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화목제가 바로 드려진 제물로 식사를 함께 하는 제사의식이지 않습니까? 식사는 모든 사람에게 가장 근본적이기 때문에 함께 밥을 먹는 것은 근원으로 돌아가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이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목구멍이 열려야 마음문도 열리고, 마음문이 열려야 하늘문도 열리는 법이라고 ... ㅎㅎ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사시는 동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로부터 끊임없이 비난받으신 이유 중에 하나는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런 혹독한 비난에 아랑곳없이 꾸준히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셨습니다. 주님은 비난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특이하게 답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5:31-32)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과 더불어 식사를 하신 것은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부르는 방법이었고 그들을 회개시켜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해주는 방법이었습니다.

다윗으로 하여금 더 넘치는 은혜로 가슴 벅차도록 만든 것은 단지 하나님께서 자신의 필요를 채워 주시고 고난 가운데 승리하게 해주신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삶의 여정을 지나며 하나님께서 자기같이 허물 많은 인생을 하나님의 식구로 받아들여 주셨음을 감사했습니다.

여러분은 가족이라는 말이 정겹거나 친숙하십니까 아니면 식구라는 말이 더 정겹고 친숙하십니까? 지금은 '가족'이라 하지만 옛날에는 '식구'라 했습니다. 지금 초등 교과서에서는 '식구'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합니다. 가족(家族)은 일본식 표현으로 일제강점기부터 쓴 말이라고도 합니다. 그전에는 '식구'라 했다는 겁니다.지금도 어르신들은 '가족'보다는 '식구'라 합니다. 이 말은 한자말 '食口'에서 온 거 잖아요. 같이 먹는다는 말이지요.

예능 중에 한끼줍쇼라는 이경규와 강호동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있지요. 이 프로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는 저게 뭐 재미있을까? 아무 집에나 벨 눌러 저녁 한끼 같이 먹는 프로인 것 같은데하며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의외로 우연한 만남을 통해 평범한 가정에서 나누는 소박한 저녁 한끼 식사, 그리고 그 가운데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잊혀졌던 가족의 따뜻함과 사람의 정을 나누는 모습이 참 감동적이고, 식구의 소중함으로 깨우쳐주는 프로그램이더군요.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위해서 식탁을 차려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실패와 성공에 상관없이, 허물과 죄에 관계없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시어 그 식탁 앞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는 생명과 교제의 기쁨을 부어 주시기 원하십니다. 주님의 은총의 식탁, 은혜의 밥상을 늘 대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 5절 하반절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다윗이 경험한 말할 수 없는 기쁨의 원천 가운데 하나는 기름 부으심이었습니다. 목자들은 우리에서 건기로, 여름에서 겨울로 한 계절을 지나게 될 때, 양들을 높은 고원지대로 인도하는 습관이 있답니다. 여기서 목자들은 양을 한 마리씩 끌어안고 머리에 기름을 붓는다고 합니다. 기름으로 씻어주고 물로 목을 적셔주기도 합니다. 이 때 양들은 아주 행복해 합니다.

양에게 기름을 머리에 바르는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로 해충을 방지하기 위하여 기름을 머리에 바릅니다. 중동 지방에는 양의 코에다가 알을 까는 파리가 있는데, 그 유충 때문에 양이 괴로워합니다. 그래서 파리가 달라붙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양의 머리에 기름을 바릅니다.

둘째로는 양의 머리에 기름을 바르면 양끼리 싸움이 없어집니다. 양은 머리로 서로 받는 습관이 있어서 서로 싸울 때에 머리를 들이대고 밀어내치면서 받으면서 싸웁니다. 그런데 머리에 기름을 발라두면, 미끄러져버려서 싸울 재미가 없어짐으로 싸우지 않게 됩니다.

사람 중에도 손이 참 많이 가는 스타일이 있다고 하는데, 양이란 동물이 참 손이 많이 가는 스타일이가 봅니다.

다윗은 인생에서 세 번의 기름부음을 경험하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사무엘이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붓던 첫 번째 경험을 통해 그는 이전에 경험해보지 않은 강력한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삼상 16“[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그 기름부음의 경험을 통해 다윗은 지혜와 용기, 지도력과 놀라운 성품의 변화를 경험하게 된 줄로 믿습니다.

다윗의 이러한 고백은 찬송으로 이어졌습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찬양 하나가 버뜩 생각나지 않습니까? 우물가의 여인처럼 ... “- 주님 채우소서 나의 잔을 높이 듭니다 하늘 양식 내게 채워 주소서 넘치도록 채워 주소서

이제 두 가지 선택 앞에 우리의 삶을 결단할 시간입니다. 상처에 매여 과거의 아픈 기억을 곱씹으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저버린 채 살아가실 것입니까? 아니면 상처를 능가하는 위대한 영적인 회복을 바라며 하나님이 베푸시는 식탁 앞으로 나아올 것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과의 관계를 붙들고 사십시오. 이렇게 넘치도록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다윗의 것만은 아닙니다. 그 은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붙들고 살기를 소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원수들 앞에서 우리를 자랑하시고, 때론 쓰러져 일어날 힘 조차 없는 우리들을 다시금 세우셔서 내 잔이 넘칩니다라고 고백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들을 붙들고 오늘도 감사하며 살아가시는 은총을 경험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